[중앙 포럼] 안보의 집단 불감증인가(박보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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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희망 속에 불길함이 드러나고 불안 속에 기대감이 나타난다. 선거 이후의 민심은 대조적인 감정이 섞이게 마련이다. 이번 대선의 후유증은 유별나다. 이는 안보를 둘러싼 논란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핵위기 무덤덤한 국민들

북한이 조성한 핵위기 상황은 긴박하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우리와 관계없는 일'로 여긴다. 핵무기는 "내 말 듣지 않으면, 너죽고 나죽는데 어떡할래"라는 공멸의 협박수단이다. 민족 전체를 망가뜨리는 재앙(災殃)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을 겨냥했느니, 북한체제 존속의 독특한 방식이니 하면서 느긋함이 넘친다. 재앙의 요소는 따지려 들지 않는 쪽으로 사회분위기가 잡혀 있다. 안보의 집단 불감증이다.

김대중(DJ)정권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갑옷을 벗기는 데 역부족이었다. 거꾸로 남한의 안보자세를 헝클어뜨렸다.

남북 관계에 스며든 위선적 요소는 햇볕정책의 부작용이다. DJ 정권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북한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우리가 부자인 만큼 굶주린 북한 주민을 가능한 한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그 돈을 주민한테 제대로 쓰지 않고 군사력을 키우는 데로 돌렸다. 그런 약속 위반을 저질렀으면 가끔씩 따지고 정신차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간 대화.교류가 건전하게 유지.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DJ 정권은 이를 덮어줬다. 먹고 사는 기본적 인권문제를 뒷전에 돌리는 북한 지도부의 탈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자연발생적 분노마저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의 표출에는 북한 동족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민족애가 깔려 있다. 그런데도 이를 냉전적 사고의 산물로 왜곡하는 기류가 퍼져 있다. 때문에 지금의 평화는 무언가 믿음직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않다.

주한미군 철수론이 미국에서도 번지고 있다. 한국 사람한테 구박받고 있는데 주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엔 한국이 자주와 민족을 내세우니 '너희들 혼자 해봐라'는 식의 불쾌감도 깔려 있다.

미군이 빠져나가면 그 공백을 메우는데 매년 50억~1백억달러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있다. DJ의 지적대로 공무원 월급도 줄여야 한다. 군 복무기간을 다시 늘려야 하고 3D 업종에 취업할 각오도 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떠나면 일본의 재무장을 우리 혼자 견제해야 한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함께 대처했던 미국의 입장은 달라질 것이다. 반미(反美)의 기세가 일본을 견제하기엔 힘이 턱없이 부친다.

우리에게 그런 대비태세가 있는가. 자주와 주도적 외교는 우리가 부지런히 다듬어야 할 과제다. 여기엔 심리적 결연함과 실력, 지혜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북핵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리상태에서 어떻게 상황 주도의 결의가 생겨날 수 있는가.

군사력의 핵심부분은 미군에 맡겨놓고 자주와 평화를 외치는 2중의 의식구조에서 어떻게 민족의 장래를 도모할 수 있는가. 민족.자주의 정서적 해방감으론 핵위기 극복을 주도적으로 해낼 수 없다.

*** 대북관계에 '반칙 적용하라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는 "DJ 정부가 남긴 자산과 부채를 가릴 꾀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가 그의 다짐이다. 대북 정책에서 그 '꾀'를 효과적으로 써먹으려면 햇볕정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의 반칙에 대해 무턱대고 동정과 이해를 해주는 것은 금물이다. 이는 정책추진력을 떨어뜨리고 국민적 갈등을 유발한다. 북한 정권은 더욱 탈선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반칙과 특권'문제를 대북 관계에 전략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한 평화와 교류가 건강해진다. 그것이 한반도 상황 주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박보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