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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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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현대 국가에서 정당은 가족만큼 필수적이다. 정당은 의회를 구성하고 집권자를 분만한다. 한국에서도 정당은 핵심적인 존재다. 헌법 제8조는 국가가 정당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가는 매년 수백억원을 지원한다. 그래서 정당은 개인들만의 이익단체가 아니다. 철저하게 공적인 존재다.

 정당은 국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정당이 솔선하여 가치를 지키면 사회는 반듯하게 선다. 반대로 정당이 앞장서서 가치를 훼손하면 사회는 비틀거린다. 정당은 도움이 될 수도, 해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해악이 1990년 3당 합당이다. 88년 국민은 여소야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노태우 민정당, 김영삼 통일민주당, 김종필 공화당이 합쳐 이를 뒤집어 버렸다. 가치동맹이라고 선전했으나 이익야합이었다. 합당은 나라를 둘로 쪼갰다. 이념적으로는 보수끼리 뭉쳐 진보를 고립시켰다. 지역적으로는 영남·충청이 합쳐 호남을 국토의 구석으로 몰았다. 무엇보다 3당 야합은 두고두고 해로운 관행을 만들어 놓았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유린하는 것이다.

 정당이 보여주는 또 다른 해악이 배신이다. 대선 때마다 정당한 절차로 뽑힌 후보를 반란 세력이 공격한다. 정당한 경선에서 선출된 후보는 가장과 같은 존재다. 경제력이 흔들리고 잘못을 저질러도 가장과 절연할 수 없듯이 한번 후보는 끝까지 후보다. 새로운 하자가 드러나든, 잘못을 저지르든, 후보의 책임을 조직도 같이 안고 가야 한다. 뭉쳐서 노력하고 그래도 안 되면 5년 동안 야당 하면 된다. 그런데도 조직의 배신자들은 후보만 공격한다. 적전(敵前) 분열이다.

 1997년 신한국당에서는 서청원·이재오 등이 반란을 주도했다.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새로 드러나 이회창 후보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분이 약했다. 당도 후보 검증을 제대로 못한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당원들이 후보 약점은 인정하고 강점 아래 뭉쳤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2002년 민주당에서는 반(反)노무현 바람이 거셌다. 노 후보는 여러 논란적인 언행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가 겹쳐 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러자 적잖은 이가 ‘제3 후보 정몽준’ 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전·현직 다수가 탈당하거나 후보 단일화를 주창했다. 이인제·박상천·김영배·홍재형·정균환·김민석·안동선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 또한 명분 없는 일이었다. 후보가 부실하여 정권을 잡지 못해도 당원이라면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그것이 경선이란 제도의 명령이요, 원칙이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조직원의 의무는 영원한 것이다. 유권자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박해 받는 정통 후보’를 밀어주었다.

 2012년에도 민주당에서는 후보가 공격받고 있다. 전북지역 민주당 소속 전·현직 지방의원 200여 명이 안철수 지지를 선언했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전직 국회의원 67명은 당원이 문재인·안철수 중에서 자유선택을 할 수 있도록 당이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사실상 ‘당 후보 문재인’을 배척할 권리를 달라고 한 것이다. 반노(反盧) 세력은 더욱 적극적인 반란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은 57년 전통의 제1 야당이 13차례 지역경선을 통해 뽑은 정통 후보다. 새로 드러난 하자도, 특별한 잘못도 없다. 설사 그런 게 있어도 당은 뭉쳐야 할 것이다. 패배를 각오하더라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없는데도 그들은 정통 후보를 흔든다. 친노 후보로는 박근혜를 못 이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 그런 후보를 뽑은 당은 도대체 무엇인가.

 민주당 내 배신 파동은 정치세력의 권력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원의 의무라는 공동체 가치와 연결된다. 대선 때마다 정당한 후보를 조직원이 흔들면 자라나는 세대는 무얼 배울 것인가. 작은 일만 있어도 가장을 흔들려 할 것 아닌가. 사회의 도(道)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배신을 문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