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스타열전(68) - 루이스 곤잘레스(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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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며 다르듯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타격자세 또한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을 띠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타격폼을 일일이 기억한다는 것은 야구 전문가에게조차도 아마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좌익수 루이스 곤잘레스의 타격자세는 아마도 예외가 아닐까?.

타석에서의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그의 타격 자세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며 그를 현재 메이저리그 타자중 대표적인 슬러거중 한명으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중의 하나이다.

플로리다 탬파에서 자라난 루이스 곤잘레스의 어린 시절 야구 우상은 ‘찰리 허슬’ 피트 로즈였다. 신시내티 시절 로즈의 소속팀은 탬파에 스프링캠프를 차렸었고 곤잘레스는 이때 로즈의 모습을 지켜보며 빅리거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의 이혼이라고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쿠바 이주민의 아들인 곤잘레스는 대학시절 야구선수로서의 자질을 과시했고 지난 88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에 의해 4라운드 지명을 받으며 직업선수로서의 첫발을 디뎠다.

약 3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 그가 빅리그에 진입한 건 지난 90년, 그의 빅리그의 진입에는 90년 서던리그 더블에이팀 콜롬부스에서의 좋은 성적이 큰 밑거름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타율.265, 2루타 30, 24 홈런, 89타점을 기록하며 올스타팀에 선정되는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던 그는 더블에이의 시즌이 끝난 9월4일 LA다저스전에 핀치 히터로 출전하며 빅리그 무대의 신고식을 가졌다.

91년 마침내 풀타임메이저리그로서의 첫시즌을 맞은 그는 50개의 장타를 쳐내며 65년 조 모건이 세운 이부문 팀 신인기록을 경신하며 각광을 받았지만 8월 수비중 다이빙 캐치를 하다 다친 왼쪽 어깨는 시즌 말미 그를 괴롭혔고 이후에도 그를 움츠려 들게한 주요한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92년 다소 실망스러운 한해를 보낸 곤잘레스는 93년 시즌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쳐내며 3할의 타율을 기록, 자신의 타격 재질을 과시했다. 이해 그는 34개의 2루타와 15개의 홈런, 72타점의 성적을 거두며 이부문 개인 한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그에게는 맞추는 재주는 있지만 파워가 부족한 선수라는 딱지가 늘 붙어 다녔고 92년 3할을 기록한 이후 99년 애리조나로 팀을 옮기기전까지 단 한 시즌도 그에 근접한 타격을 기록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의 몸쪽 공 공략에 있었으며 이는 바깥쪽 공략을 위해 취하고 있던 그의 클로즈드 스탠스와 연관이 있었다. 상대 투수들은 그에게 집중적으로 몸쪽 승부를 펼치며 그를 괴롭혔다.

95년 시즌중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된 그는 96년 79타점을 기록하였고 빅리그 들어 처음으로 삼진 숫자보다 볼넷숫자가 많은 시즌을 기록했지만 타격에 있어 2할7푼대의 벽을 넘지는 못하였다.

96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가 된 그는 친정팀 휴스턴으로 복귀 97시즌을 맞았고 그곳에서 그는 개인 최다인 2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등의 호조를 보이기도 했지만 91년을 제외한 풀타임 메이저리그로서 가장 나쁜 타율(.258)을 기록하는 등 전반적인 성적은 부진이라는 단어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1년간의 친정팀 생활을 끝내고 97년 겨울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생소한 아메리칸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였다. 그리고 이곳은 그의 야구인생에 있어 전환점과 같은 곳이 되었다.

디트로이트에서의 곤잘레스는 변화를 요구받았다. 우측 펜스가 짧았던 타이거스구장은 왼손 타자인 그에게 몸쪽 공 공략이라고하는 숙제를 다시 한번 제시했고 그는 이를 오픈 스탠스라는 새로운 타격폼으로 도전했다.

오픈 스탠스는 그에게 과거와는 다른 파워를 가져다 주었고 98년 곤잘레스는 빅리그 들어 처음으로 20개의 홈런벽을 돌파, 23개의 홈런을 쳐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시즌중반 세 쌍둥이를 얻는 기쁨까지 맛보며 아메리칸리그에서의 새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그런 그의 느낌과는 달리 98년에 3할 타자였던 그렉 제프리스를 선택했고 곤잘레스는 카림 가르시아와 5십만달러라는 교환조건으로 또다시 낳선 도시 피닉스로 향하게 되었다.

요기 베라의 가능성있다는 한마디가 곤잘레스의 피닉스 생활을 가능하게 했지만 애리조나에서도 그에게는 별반 다를 것 없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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