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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중앙일보

입력

'제리 맥과이어' (1996년) 에서 순박한 표정으로 톰 크루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염모하던 르네 젤웨거(32) 를 기억하는지.

카메론 디아즈, 위노나 라이더, 브리짓 폰다 같은 배우들이 즐비한 할리우드에서 이웃 동네에서 보았음직한, 그래서 '참 촌스럽다' 는 소릴 들을 것 같은 소박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젤웨거는 분명 별종이지만 오히려 이를 무기로 일약 스타의 대열에 오른다.

'미 마이셀프 아이린' (2000년) 에 짐 캐리와 함께 출연하며 그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던 젤웨거는 같은 해 제작한 '너스 베티' 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너스 베티' 는 올 초 국내 개봉돼 별다른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을 만큼 탄탄한 구성이 돋보였던 영화다.

정신적 충격으로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간호사 베티 역을 맡은 젤웨거는 잘 다듬어진 연기와 풋풋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두 가지 캐릭터 속에 빚어내는 미소는 뭇 남성의 간장을 녹일 정도로 돋보였다. 그 덕에 올해 골든글러브 코미디.뮤지컬 분야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 그녀를 위한 영화가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 다. 원작인 헬렌 필딩의 동명 소설은 영국 여성들 사이에서 "바로 내 이야기잖아" 라는 감탄을 자아내면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젤웨거를 안다면 이보다 그녀에게 더 잘 어울리는 역할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을 것.

이 영화의 성패는 원작 소설 속의 인물을 영화로 어떻게 옮기느냐에 달려 있었다. 소설 속 브리짓이 어떤 여자였던가?

30대 초반의 독신녀로 10㎏은 감량해야 할 통통한 몸매를 지닌 '꼴사나운' 여성이다.

게다가 술과 담배를 잠시도 입에서 떼지 않는가하면 성격마저 차분하지 못해 매사에 허둥대기 일쑤다. 그래도 꿈은 있어 날씬해진 다음에 멋진 남자를 만나기를 열망한다.

앞서 열거한 미녀 배우들을 이 역할에 캐스팅했다면 사실감을 살릴 수 있었을까. 제작진은 다부진 연기력과 털털한 이미지를 가진 젤웨거를 놓치지 않았다. 대책 없이 망가져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젤웨거는 그에 걸맞는 연기로 화답한다.

팝송 '올 바이 마이셀프' 를 어눌하지만 온 몸으로 따라부르거나 배가 들어가 보이도록 커다란 거들을 입고 남자에게 안겼다가 무안을 당하는 대목에선 나이든 여자의 처절함을 분출한다.

그런가하면 커다란 엉덩이를 TV 생중계에서 드러내 이미지를 구기고, 야채를 묶은 파란 끈을 넣고 끓인 탓에 퍼렇게 변해버린 스프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허둥댐도 잊지 않는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밉다는 생각이 끼어들기도 전에 브리짓보다 더 브리짓다운 변신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영국 여성들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브리짓을 미국 텍사스 출신인 그녀가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영국에선 "미국인이 브리짓 역을 맡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불만이 들끓었지만 그녀에게 매료된 영국 관객들은 벌써 속편에도 그녀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상황이 됐다.

실제 젤웨거는 다이어트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배역을 위해 햄버거.피자를 먹으며 억지로 살을 찌웠고 영국식 영어를 익히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런 열성이 그녀의 자질과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성과가 아닐까.

'브리짓…' 은 르네 젤웨거의 시대를 예고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당초 빼어난 외모로 승부를 걸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물어지기 마련이겠지만 연기력으로 정상에 올라선 그녀인 만큼 탄탄대로 위에 서 있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제리 맥과이어' 에서 그녀가 선사했던 대책없이 소탈한 미소가 떠오른다. 젤웨거는 웃어도 목젖이 환히 보일 듯하고 세수를 하지 않고 나와도 사랑스러울 것같은 정말 알싸한 여자가 아닌가.

*** '브리짓 존스의 일기' 는…

서른을 넘긴 여성의 심리와 사랑을 코믹하게 그린 영국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는 어느 영화보다 여성들의 마음에 착 달라붙는 작품이 될 듯하다.

외모 때문에 뭔가 일이 잘 되지 않은 채 나이가 들어가는 초조함이란 꼭 직접 경험해야 알 일인가.

브리짓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처절한 몸짓은 또하루 멀어져가는 젊음에 대한 아쉬움이요, 언제나 내곁에 있을 것 같았던, 떠나버린 사랑에 대한 한탄이기에 공감대가 넓을 수 밖??

부모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소개받은 마크(콜린 퍼스) 가 자신에게 '줄담배에 알콜 중독자' 라고 욕하는 소릴 엿들은 출판사 홍보 담당 브리짓(르네 젤웨거) .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새해부터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각오의 요체는 살을 빼고 남자를 만나는 것.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출판사 편집장 다니엘(휴 그렌트) 과 음탕한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사랑에 빠진다.

르네 젤웨거와 삼각 관계를 이룬 두 남자 역은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의 멋쟁이 휴 그렌트와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서 호평을 받은 콜린 퍼스가 맡았다.

감각적인 대사들이 빠른 속도로 이어지며 시종 웃음을 자아내고 배우들의 호흡도 잘 맞는다. 영화는 시종 유쾌하지만 행여 남자에게만 집착하는 브리짓을 한심한 여자로 여기거나 볼품없는 브리짓을 두고 잘 생긴 두 남자가 넋을 놓는다는 점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섬 원 라이크 유' '키스 댓 걸' 등 익숙한 영화 음악을 듣는 것도 즐거움이다. 원작의 작가인 헬렌 필딩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여성 감독 샤론 맥과이어가 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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