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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IMF 3년8개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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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조기 졸업했다.

1997년 12월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로부터 3년8개월 만에, 당초 약정보다 2년8개월 앞당겨 지난 23일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경제주권을 회복했다.

*** 개혁프로그램 수용 등 논란

바깥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대부분 관계기관과 외신들은 '우등생' 한국에 높은 평점을 주고 있다. 다시 또 외환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와 비교해 모범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 가운데 이웃 중국의 한 전문가 분석이 흥미롭다.

중국 국민경제연구소 팡강(樊綱)소장은 중국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측과의 최근 대담에서 현재의 한국 경제상황을 "높은 임금과 무분별한 외국기술 수입, IMF 개혁프로그램의 추종 등으로 어려움에 빠졌다" 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이 지난 20년간 중국이 가장 관심을 갖고 관찰해온 모델이며 현재 한국 경제의 어려움 역시 중국에 교훈을 제공한다" 고 전제한 뒤 기술과 자본의 비교우위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상승폭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것이 첫번째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체 개발한 신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여전히 '적정수준의 기술' 에 의존할 필요가 있으며 고가의 첨단기술을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다면 그 자체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교훈으로 그는 장기적인 구조개혁이 근본 해결책이긴 하나 일단 위기가 발생했다면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경기위축은 모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구조개혁만 강조하는 IMF 처방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 그는 말한다.

이같은 견해는 물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문제와 관련해 그의 첫번째 견해, 생산성을 초과하는 고임금은 이견이 없는 대목이나 두번째 '적정수준 기술 전략' 과 세번째 IMF 프로그램 수용에는 다른 견해도 많다.

그의 지적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지적하듯 IMF 프로그램을 우리가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사실이고 범세계적인 경제난 속에 중국만이 독야청청 고도성장을 계속하는 상황이 우리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에게 외환위기는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돌발사변' 이었다. 공황상태의 충격 속에서 교체된 정부는 IMF의 일방적 프로그램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수용했다. 국민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충격이 다소 가라앉은 다음에야 프로그램의 적실성에 일부 반론이 제기됐지만 본격 논의는 어려웠다.

3년8개월의 IMF 관리체제 기간 우리 사회엔 '개혁' 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른바 30대 재벌 가운데 14개가 쓰러졌고 5백군데가 넘는 부실금융기관이 정리됐다. 금융.기업의 낡은 관행이 상당 부분 고쳐졌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필사의 구조조정을 통해 몰라보게 건실해졌다.

부실기업들이 무너진 자리에 신생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국내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제압한 국산영화의 연속히트, 동남아.중국을 휩쓰는 이른바 '한류(韓流)열풍' 도 주목할 만한 싹이다.

그러나 경제의 대외의존 심화, 중산층의 몰락, 고용불안 등 어두움도 큰 것이 사실이다.

*** 함께 찾는 성공.실패의 교훈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성과와 외부의 긍정적인 평가, 낙관적인 전망에도 국민은 IMF 조기졸업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정쟁과 행정의 미숙, 잦은 시행착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지난 3년8개월을 차분하게 정리, 음미할 필요가 있다. IMF 프로그램의 원천 문제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과정을 대상으로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함께 찾아야 한다. 다시 97년 같은 위기가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이 중국의 반면교사 아닌 귀감으로 다시 설 실마리가 거기 있을 것 같다.

문병호 <논설위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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