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술 성공률 96%, 미국·독일은 85% … 해외 의료진 입국 러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황신 교수(오른쪽)가 생체 간이식수술을 받은 환자 조승민씨(왼쪽)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모습. 조씨는 아내 김현진(가운데)씨의 간을 이식받았다. 김수정 기자

“자신의 장기 일부를 떼어준다는 게 쉽지 않죠.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최근 생체 간 이식수술을 받은 조승민(41세·부산 해운대)씨의 얘기다. 그는 2년 전 간암으로 한 차례 절제술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암이 재발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조씨의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런 그에게 아내 김현진(39세)씨가 간이식수술을 권했다. 자신의 간의 일부를 떼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부부는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10월 23일, 부부는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퇴원을 앞둔 조씨는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3000건 돌파

장기이식수술은 ‘현대의학의 꽃’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말기 환자에게 새 삶을 열어준다.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과 탄탄한 의료진, 시스템이 뒷받침해야만 가능하다. 특히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떼어내 이식하는 ‘생체 이식’은 더욱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뇌사자 장기이식과는 달리 기증자와 환자 모두 건강하게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생체 이식을 할 수 있는 기관은 많지 않다. 신장·간·췌장·췌도·소장 등이다. 그 가운데 간은 최대 70%까지 잘라내도 6개월 정도 지나면 80~90%가 복원된다. 기증자와 수혜자의 간의 크기와 비율이 적합해야 이식할 수 있다. 불법장기매매 탓에 타인의 간 이식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로 가족 간에 기증이 이루어진다. 간 내부의 복잡한 혈관구조 탓에 웬만한 의료기술로는 생체 간 이식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다. 지난 8월 생체 간 이식 3000건을 돌파했다. 국내는 물론 의료선진국도 세우지 못한 최다 기록이다. 생체 간 이식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이룬 성과다. 지금도 하루에 한 건 꼴로 이식수술을 한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장 황신 교수(간 이식·간담도외과)는 “세계 최초로 생체 간 이식을 시작한 일본도 아직 3000건을 넘지 못했다”며 “미국에서 한 해에 100~200건이 시행되는 반면, 아산병원에서만 매년 350건의 수술을 소화한다”고 말했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수술 성공률이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성공률은 96%에 이른다. 황 교수는 “간 이식을 먼저 시작한 독일·미국 등 선진국의 평균 성공률은 85%에 그친다”며 “과거에는 우리가 해외로 나가서 배웠지만, 지금은 해외의료진이 매년 100여 명씩 배우러 온다”고 말했다.

새로운 이식 기법, 세계가 배우러 와

서울아산병원이 생체 간 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이 개선한 기술력 덕분이다. 세계 최초로 ‘변형우엽간이식술(간의 오른쪽 부분을 이식하는 수술)’과 ‘2대1 간이식술(두 명의 간을 조합해 이식하는 수술)’을 개발해 교과서를 새로 썼다. 기증자의 간을 변형·조합해 최대한 이식이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이다.

 과거에는 간을 이식하려면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이 같아야만 했다. 하지만 1996년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ABO혈액형 부적합 생체 간 이식’을 성공한 이후로,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간 이식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간기증자의 영역이 크게 확장돼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기술개발의 원동력은 바로 의료진의 열정이다. 생체 간 이식수술은 대개 10시간 이상 걸린다. 또 수술 후 환자관리를 위해 간이식팀 전문의들은 번갈아 가며, 매일 24시간 내내 중환자실을 지킨다. 황 교수는 “미국에서 이혼을 많이 당하는 직종이 이식수술 의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인생활이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환자에 대한 사명감과 헌신,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살아남는 게 아름답다’

서울아산병원은 더 이상 생체 간 이식의 ‘신기록 달성’을 원치 않는다. 생체 간 이식은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 탓에 생겨난 차선책이어서다. 갑자기 이식이 필요한 응급환자는 생체 간 이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황 교수는 “현재 국내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100만 명 당 7명에 불과하다”며 “20명 수준으로 기증이 늘어야 환자가 안정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병원 스스로 기증자 발굴에 힘쓰고 있다.

 황 교수는 생체 간 이식수술을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정의한다. 이식의 96%는 가족의 기증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 절반 이상은 자녀가 부모에게 기증하는 경우다. 수혜자는 가족의 설득에 못 이겨 이식수술을 하지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평생 안고 산다. 황 교수는 “결국 생체 간 이식은 내 가족을 지키는 동시에,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살아남는 게 아름답다.” 황 교수는 항상 팀원에게 이 말을 강조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오경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