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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백인女 맞아? 중국男 얼굴 보고 '깜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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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대에 지어진 카이펑푸(開封府)의 옛 청사. 판관 포청천으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포증(包拯)은 카이펑푸의 최고 책임자인 지부(知府)를 지냈다.

북송(北宋)의 수도였던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에 유대인 마을이 있었다고 해서 그 후손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유대인이라면 나라 없이 세계 곳곳에 퍼져 살면서도 문화의 고유성을 지켜온 민족이라는 인상이 깊어서 이질적인 중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후손의 숫자가 500명 남짓이라니까 만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근데 일이 술술 풀렸다.

정저우(鄭州)에서 카이펑으로 가는 정카이 대도에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보인다. 정카이 대도는 국토가 비좁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도로다. 두 도시를 잇는 60㎞가 처음부터 끝까지 왕복 10차선이다. 자동차 전용 고속공로가 별도로 있어서 차량 통행도 한산하다. 거기다 완전 평지다. 최적의 마라톤 코스를 계획하다가 중간에 도로용으로 설계변경이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중에 물어보니 실제 마라톤 대회가 매년 이 도로에서 열린다고 한다. 평소에는 자전거인들의 천국이 된다.

같은 동호회에서 온 듯 떼 지어 자전거를 탄다. 자연스럽게 한 부부와 주행을 함께하게 됐고 카이펑의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20여 명과 합류했다. 그들은 내 여정을 듣고는 너도나도 기념사진 촬영을 청했다. 내가 카이펑의 야시(夜市) 근처에서 묵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자전거인들은 다 한 가족’이라고 자전거 사해동포주의를 선포했다. 나로서는 중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관시(關係)’가 생긴 것이다.

1 동젠파(董建法)씨를 보고 그의 할머니가 유대인이라는 걸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2 루자 모텔 직원들에게 유대인 회당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천주교 성당으로 안내해 줬다. 이슬람 계통의 순허(順河) 회족 자치구 안에 있어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공존한다.

두 사람이 뽑혀 앞뒤에서 나를 호위했다.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사람들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인 데다 셋이서 함께하니까 거칠 게 없이 루자주뎬(如家酒店)까지 내달렸다. 루자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모텔이어서 그동안 몇 번 묵었고 꼬박꼬박 가격표대로 돈을 냈었는데 관시로 연락해놓으니 30% 깎아준다. 다만 접객부 직원은 관시가 있다는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직접 관시 여부를 확인해줄 때까지 수속을 미뤘다. 반고(班固)사당이 있는 퉁바이산(桐柏山)에 입장할 때도 퉁바이현의 문화관장이 미리 전화를 해줬지만 입구에서 다시 확인 전화를 하고 나서 70위안짜리 입장표를 5위안(현지인용)짜리로 바꿔준 적이 있다. 관시가 인정에 이끌려 호의를 베푸는 정도가 아니라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회규범 같다. 그냥 ‘나 누구 아는데…’로는 통하지 않는다.

모텔 여직원, 유대 후손인 시아버지 소개
직원과의 관시가 확인되자 이 여관과의 관시가 생겼다. 직원들이 한 가족 같다. 야시에 가려고 길을 물어보면 길 밖에 나와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기사한테 한참 설명한 뒤 나를 태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대인 후손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직원이 자기 시아버지가 바로 유대인 후손이라고 한다. 그는 곧바로 시아버지와 통화한 뒤 다음 날 저녁 내 방으로 찾아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사천리, 관시의 힘이다.

근데 가만 보니 이 여직원의 얼굴도 허난성에서 보는 일반적인 중국여자와 다르게 얼굴이 각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조상 중에 이슬람 계통인 회족이 있다고 한다. 회족의 피가 섞여 있는데 시아버지는 유대인이다. 그럼 그녀의 남편도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고 봐야 하고, 둘 사이에 낳은 아이는 유대인과 회족과 한족의 피가 섞이게 될 것이다. 세계 평화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지역에 따라 신체 특징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껴왔다. 혈액유전학자인 자오퉁마오(趙桐茂)는 Gm 혈액형을 근거로 북위 30도 기준 남북으로 민족 기원이 다르다는 것을 발표한 바 있다. 남방인은 남방계 몽고인종으로부터 기원해서 양자강 하류에서, 북방인은 북방계 몽고인종으로부터 기원해서 황하 중·상류에서 각각 살았다는 주장이다. 남방인과 북방인은 모두 근처에 있는 소수민족의 Gm 혈액형과 유사성을 보여 민족의 융합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Gm 혈액형은 ‘인류면역 글로불린 동종이형 유전표시’ 방식으로 혈청의 세 번째 단백구에 자리 잡고 있어서 혈청형(血淸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중국 전역을 여행해 보면 된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키 차이가 너무 큰 남왜북고(南矮北高)를 대번에 알 수 있다. 눈꼬리가 올라간 정도나 콧등 높이, 코 넓이, 입술 두께, 피부색, 땀구멍 수 등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내가 본 중국인들은 남북 할 것 없이 대체로 얼굴이 둥글고 평평한 편이다. 속된 말로 ‘왕서방’ 하면 연상되는 그런 얼굴형이다.

그런 전형과 조금 다르게 느껴져 메모를 해놨던 곳이 허난성 신양(新陽),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그리고 카이펑이다. 신양은 유독 여자들이 예뻐 보였다. 한국에서는 중국 여배우 중 ‘색, 계’의 탕웨이(湯唯)를 좋아하지만 중국에서는 탕웨이보다 판빙빙(范<51B0><51B0>)을 좋아한다. 탕웨이의 얼굴은 거위알(鵝蛋)형이고 큰 쌍꺼풀이 특징이어서 김태희와 비슷한 유형인 반면 판빙빙은 오이(瓜子)형의 얼굴에 봉황의 눈을 닮아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고 해서 단봉안(丹鳳眼)이다. 신양 여자들은 피부가 희고 판빙빙처럼 오이형이다. 신양이 중국의 가운데에 위치해서 남북의 장점을 골고루 흡수했다고 하는데 남자들에 대해서는 왜 그런 느낌이 없지? 혹시 남북의 단점만 취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남자여서일까?

어느 지역을 가든 남자들은 머리 모양이 똑같아서 비슷하게 보인다. 모두 깍두기형이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꼴을 보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중처럼 삭발한다. 성인이 돼 다소 관용을 베푼 게 한국 조폭들의 머리 모양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불필요한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라고 추정해 본다. 중국도 이전에는 머리를 길러서 성인이 되면 상투를 틀었다. 청(淸)을 세운 만주족들이 변발을 강요하자 모두 머리를 길게 땋아서 뒤로 늘어뜨렸다. 그러다 서양처럼 강국이 되기 위해 신식을 받아들이자고 해서 단발령을 내리고 ‘마지막 황제’ 부의(賻儀)부터 먼저 잘랐다. 그러자 한족들은 조선에서처럼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외치며 부모 잃은 것처럼 슬퍼했다고 한다(원래 이민족의 헤어스타일 아니었나?). 하지만 싹둑 꽁지를 자르고 나니 머리 감기에도 편하고 빗질할 필요도 없으니 이렇게 좋은 머리 모양이 또 있을까 싶었나 보다.

유대인들, 무슬림인 회족으로 민족 ‘개조’
머리카락이 짧으니 둥근 두상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카이펑에서는 시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두상이 장방형이고 이목구비가 큰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랍 계통이나 유대인 또는 코카서스 인종의 피가 섞였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 카이펑은 생각한 것보다 국제화된 도시였지 않나 상상해 본다. 그렇게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었다.

처음엔 방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그도 눈치챘는지 “전혀 유대인처럼 생기지 않았지?”가 첫마디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한족 마스크를 벗을 줄 알았다. 머리카락은 흑색에 직모이고 눈은 가늘게 찢어지고 코는 남방인처럼 벌렁했다. 유대인 하면 연상되는 외모의 특징이 전무한 그는 더 놀랍게도 조상이 북송 때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바로 할머니가 유대인이었다. 할머니는 1930년대 동유럽에서 나치의 학살을 피해 가족들과 상하이로 피신해온 유대인이었다. 중국인과 결혼했고 둘 사이에 낳은 자식 역시 중국인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올해 67세의 둥젠파(董建法)다. 몸에 흐르는 피 가운데 4분의 1은 유대인일 텐데…. 외모를 결정하는 유전자 중 한족이 우성임에 틀림없다.

카이펑에서 유대인은 명대에 5000명까지 이르렀던 걸로 추산된다. 둥은 “그 이후 유대인들이 한족에 동화됐고 1949년 이후 민족을 선택하라고 할 때 일부는 회족이나 장족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는 두 종교의 갈등으로 피 마를 날이 없는데 여기서 유대인들은 이슬람교도인 회족 거리에 살면서 회족을 자신의 민족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아예 ‘푸른 모자를 쓴 무슬림’(藍帽回回)이라고 불렸다. 유대인 회당은 폐허가 됐다.

일부 중국학자들은 반(反)유대주의가 없었던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무시무시하다. 정복자든, 피정복자든, 상인이든, 군인이든 중국에 들어가면 민족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반유대주의도 있을 수 없다. 모계 혈통의 이스라엘은 카이펑 유대인 후손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둥은 히브리어를 할 줄 모르며 믿는 종교가 없으며 자신은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혼혈 비율만 보면 당연하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용광로와 같은 문화의 힘이라고 믿는다. 나는 인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족을 복속하는 데 통혼(通婚)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 결국 인구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래도 전쟁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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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글·사진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저자 hongdong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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