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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형 고물상 불황속 날로 번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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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본에서 부도기업의 사무기기.설비를 인수해 신설 기업에 되파는 기업형 리사이클 업체가 번창하고 있다.

시장 규모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일본의 고물상 영업허가 수는 불황이 깊어지던 1997년 이후 매년 1만~2만건씩 새로 늘어나 올해에는 모두 55만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기업형 리사이클 업체는 연간 2만개가 넘는 부도기업을 상대로 영업한다는 점에서 일반 가정의 고물을 사들여 개인에게 되파는 리사이클숍과는 규모나 취급품목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대개 업종별.물품별로 전문화하면서 다양한 기업수요를 개척하고 있다.

도쿄(東京)에 위치한 템포스바스터즈사는 폐업하는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주방용 설비를 전문적으로 매입해 정비한 뒤 새로 음식점을 열려는 중소 자영업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회사매출은 2000년 17억엔에서 지난해엔 34억엔으로 커졌다.

또 후지야도구점은 도산기업의 미술품과 응접세트를 헐값에 인수해 중소기업들의 응접실.회의실 내장 세트로 팔고 있다.

이 밖에 도쿄의 도산물품 취급업체인 도미자와는 부도기업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류.비품 등 쓰레기를 무료로 인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유명해졌다. 도미자와는 2000년 도쿄 에도가와구에 8백여평 규모의 1호점을 낸 뒤 2년 만에 3호점을 개설할 정도로 급성장 중이다.

초창기엔 '시체 처리반'이라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불황을 역이용해 고속성장에 성공, 어엿한 '도산물품 비즈니스'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들은 공장의 생산설비.사무용 가구.업무용 전화 등을 신품가격의 10분의 1~ 30분의 1 수준에서 사들여 손질한 뒤 신품의 3분의 1 정도로 판매하고 있다. 마진율이 최대 10배에 달하는 셈이다. 주요 고객은 신설 중소기업이나 자본력이 약한 벤처기업, 또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다.

부도기업의 관재인을 맡은 변호사들도 최근 들어 회사의 재산을 비싸게 팔기보다 가급적 빨리 처분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도산물품 취급업체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리사이클 시장이 커질수록 신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전체적인 국내총생산(GDP)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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