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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에 맞선 정인보 대표작 한글로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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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당 정인보

20세기 전반 한국학의 초석을 놓은 위당(爲堂) 정인보(1893~?) 선생의 대표작 『조선사연구』(상권, 우리역사문화재단) 한글 완역본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1935년 1월 1일부터 36년 8월 29일까지 ‘오천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된 지 75년 만의 일이다.

 해방 직후인 46년 서울신문사에서 국한문혼용체 원문을 영인한 단행본이 나왔고, 83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펴낸 『담원 정인보 전집』(전6권)에도 포함됐으나 한글 완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글본의 상권만 848쪽 방대한 분량이다. 중국문학을 전공한 번역자 문성재 박사가 조사한 각주 800여 개가 포함됐다. 하권도 약 900쪽 분량인데 내년 초 나올 예정이다.

 문 박사는 “번역에 3년이 걸렸다. 고대 한자어는 물론 만주어와 몽골어에다 일본식 한자 표기까지 겹쳐 있어 번역이 쉽지 않았다”며 “언어학·지리학·문헌학·금석학·사상사 등을 망라하며 우리 역사의 시야를 동북아로 넓힌 『조선사연구』는 7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제는 1915년 3월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를 통해 식민사관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낙랑군 위치를 평양으로 단정하면서 한민족의 역사를 타율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보는 식이다.

 위당의 『조선사연구』는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서며 조선의 자존심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낙랑군을 포함한 한사군(漢四郡) 소재와 고조선 강역을 동북아 요동(遼東) 지역으로 파악했다. 고대사 체계를 ‘고조선-부여-고구려’의 구도로 이해하고,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실학(實學)에서 찾은 이도 위당이었다.

 단군을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최고 통치자에 대한 존호로 봤고, 삼한(三韓)이란 용어도 지명이 아니라 ‘한(汗)’이나 ‘간(干)’처럼 ‘크다’ 또는 ‘임금’의 뜻을 가진 존호로 해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이란 용어도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숙신(肅愼)’·‘주신(珠申)’ 등과 마찬가지로 만주어 발음을 옮긴 것이라고 했다.

 당초 위당은 단군조선부터 이씨조선까지 5000년 한민족 역사를 통괄할 계획이었으나 삼국시대에서 그쳤다.

일제가 ‘일장기 말소사건’을 빌미로 1936년 8월 29일 동아일보를 강제 정간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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