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제주 해군기지는 필요하다면서 사과도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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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오른쪽)가 2일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방문해 강동균 마을회장으로부터 제주해군기지 관련 자료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2일 제주 강정마을에 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대통령이 되면 주민 말씀을 다시 한번 경청하고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주민들의 말씀을 듣고 사과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공사 강행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다.

 그는 강정마을 마을회관에서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비록 전임 (노무현) 정부 일이지만 (주민에 대한 사과는) 대통령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력 대선 후보 중 강정마을을 찾은 건 안 후보가 처음이다.

 하지만 그는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선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기지 건설공사를 계속 추진할 것인지, 집권 후 중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신 “지난 여러 정부에서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면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있는 게 국가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며 상황론을 빌려 소극적인 동의 의사를 표시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처음 구상돼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확정되고 2010년 공사를 시작했다.

 안 후보는 이어 “과연 강정이어야 했는지, 충분히 주민 동의를 구했는지, 과정상 문제는 없었는지 엄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대외 정책에서 각자 다른 색깔을 취해온 정부들이 모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서도 기지 건설 반대파와의 충돌에 대해선 “소통 부재와 개발 만능주의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비판했었다. 안 후보는 간담회 이후 다른 일정을 위해 이동하려다 현장에서 반대시위대의 요청으로 해군기지 건설현장을 둘러봤다.

 안 후보의 이날 행보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특히 찬반 어느 한쪽에 설 때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비난을 피하기 위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 데 대해 비판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안 후보의 발언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절차적 문제를 확인했다면 하자가 있는 국책사업에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며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요구했다.

 반면에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외부의 시위 전문가들이 소속된 강정마을회 측만 만난 다음 무턱대고 ‘대통령이 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게 안 후보의 생각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안 후보는 이에 앞서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아 4·3사건 희생자 표석들을 살펴보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안 후보는 눈물을 보인 데 대해 “’○○○의 자(子)’라고 적힌, 태어나 이름도 짓기 전에 희생된 아이의 표석을 보고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며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만 명의 국민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아픔 때문이었다”고 말했다고 동행한 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이 전했다.

 안 후보는 이날 제주 방문으로 1차 전국 순회를 끝낸 뒤 “이 일(대통령직)을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던 값진 40일이었다”며 “과거를 객관적으로 보고 공은 계승하면서 과는 반복하지 않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되겠다”고 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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