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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털어버려 … 낙엽에게 배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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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반의 도시 충북 제천은 사실 산의 도시다. 백두대간 허리쯤에 분지 형태로 자리 잡았다. 시 전역이 평균 해발 274m로 그중 산지가 70%다. 하늘에 가까워 바람이 맑고 달도 밝다. 괜히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이 아니다.

제천은 또 약초가 유명하다. 대구 약령시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약령시장이었다. 볕이 좋고 사계절이 뚜렷하며 석회질 토양을 가진 제천의 약초는 예부터 약효가 잘 듣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진한 약초를 찾아 조선 팔도 의원이 제천에 몰렸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의림지(池)에서는 ‘순채’라는 약초가 났다. 겉보기엔 작은 수초에 불과하나 『동의보감』에 100가지 독소를 해독한다고 적혀 있다. 위·대장·당뇨·종양·숙취에 좋아 조선 영조 임금이 즐겼다고 한다. 제천 약초시장이 커지면서 각지의 이름 난 한약재가 앞 다퉈 밀려들었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잇는 사통팔달 입지도 한몫했다. 지금도 전국 약초의 30%가 생산되고, 황기의 80%가 유통되는 곳이 제천이다.

지난달 27일 월악산국립공원 힐링 투어 참가자들이 월악산 만수계곡에서 명상에 잠겼다. 단풍으로 곱게 물든 숲이 마음을 한결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제천은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진귀한 산약초를 푸성귀마냥 입이 미어지게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제천은 관광지로는 인기가 없었다. 화려한 것, 자극적인 것을 좇는 관광객에게 제천은 조금 심심한 동네였다. 강원도 영월·정선·태백으로 놀러가며 스쳐 지나가는 곳이 제천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반전이 일어났다. 제천을 찾는 이들이 수년 새 부쩍 늘었다. 2008년 756만 명이던 관광객수가 지난해 978만 명에 다다랐다.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제천은 2시간 남짓이면 닿는 다. 2009년 제천시가 한방특화도시를 선언하면서 한방 관광 콘텐트가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제천으로 이끈 건 한방관광을 넘어서, 보다 소박한 이유다. 청풍호반의 정취에 잠기고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다. 한때 제천을 외면했던 바로 그 이유, ‘한적함’ 말이다.

이제 제천은 치유 여행지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첫 힐링 리조트인 리솜포레스트와 월악산국립공원을 비롯해 제천 곳곳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프로그램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얻어가는 건 여행뿐 아니라 위로다. 바야흐로 제천에 힐링 바람이 분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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