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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피치]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추억의 야구 기념품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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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팩벨 파크의 오른쪽 담장 너머는 바다다.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만(灣)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을 '매카비 코브(McCovey Cove)' 라고 부른다.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영웅 윌리 매카비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요즈음 매카비 코브에는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대여섯척의 보트가 떠다닌다.

구장 안에서 경기를 지켜보지 않고 바다에서 보트를 몰면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배리 본즈(37)의 홈런 공이다. 왼손타자 본즈가 때리는 홈런은 담장 너머 구장 밖으로 날아가 매카비 코브에 떨어지기 일쑤다.

본즈는 지난 5일 시즌 47호 홈런을 매카비 코브에 떨어뜨렸다. 현재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홈런 페이스를 기록하고 있는 본즈가 때리는 홈런 하나 하나는 야구팬들에게 소중한 추억이며 기념품이다.

게다가 본즈가 1998년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기록한 시즌 70홈런을 넘어서 71호 홈런을 때린다면, 그리고 그 홈런을 매카비 코브에 떨어뜨린다면, 그 홈런공은 경매시장에서 엄청난 액수를 기록할 것이다. 98년 맥과이어의 70호 홈런공은 2백70만달러(약 35억원)에 팔렸다.

그러나 매카비 코브에 떠있는 배들이 경매장 돈 만을 바라고 본즈의 홈런공을 기다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추억일 것이다. 베이브 루스의 사인공은 진귀한 기념품일 뿐이지만 그 공에 '루스의 마지막 홈런' 이라는 역사성이 붙으면 그 공은 기념품의 단계를 넘어선 '메모러빌리아'가 된다. 그렇게 되면 야구팬들은 그 물건에서 추억을 느끼게 된다.

한국프로야구는 얼마나 소중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창고에는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를 담은 각종 진귀한 소품들이 보관돼 있다. 우리가 조금 게을러 원년 이만수가 때린 첫 홈런공이라든가 개막전에서 이종도가 때린 끝내기 만루 홈런공은 없지만 추억을 더듬을 만한 가치있는 물품들이 많다. KBO는 추후 적당한 장소를 골라 박물관을 세우고 기념품들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달 29일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홈경기 때 김성한 감독의 유니폼을 보관하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는 말을 듣고 국내 야구팬들도 메모러빌리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지난 2일 기아 타이거즈의 첫 출범경기에서 선발 최상덕이 던진 초구를 공식적으로 보관하지 않은 것은 의외였다. 기아가 야구의 역사를 시작하는 그 초구가 지닌 역사적 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어린이들의 시각으로 단어를 설명하는 퀴즈프로에서 한 어린이가 추억을 "그 속에 사람들이 있어요" 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추억의 소중함. 우리는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기억을 쓰다듬으며 빙긋이 웃음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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