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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오영욱 소장에게 듣는 ‘신사동 가로수길 건축학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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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동네 투어에 나선 시민들이 설명을 들으며 거리의 건축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좋은 동네란 어떤 동네일까. 좋은 건축은 어떤 것일까. “좋은 동네와 건물은 모양새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생활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죠. 그들에게 의미 있는 거리와 집, 가게가 좋은 동네와 좋은 건축물입니다.” 요즘 가장 ‘핫’한 동네인 신사동 ‘가로수길’은 사람들에게 어떤 동네로 기억될까. 건축가 오영욱 소장이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되새길만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건축물 5곳을 꼽았다.

지난 달 26일 일요일 오후, ‘2012 서울건축문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우리 동네 건축 투어’가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진행됐다. 건축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 30명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 프로그램이었다.

건축가 오용욱 소장이 가로수길의 역사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을 선정해 설명하고 있다.

진행은 건축가 오영욱 소장이 맡았다. 오 소장은 건축사무소 ‘oddaa’의 대표로, 유명 건축물 설계와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건축가이자 여행서를 통해 여행과 건축을 접목시킨 이야기를 전하는 여행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5년 전부터 가로수길에서 건축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가로수길 주민이기도 하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청담동 명품 거리, 도산공원 앞 등을 멀찌감치 제쳐두고 가로수길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뭘까. 오 소장은 가로수길의 인기 요인을 길의 ‘보행환경’과 ‘물리적 환경’으로 꼽았다.

“가로수길이 여타 거리와 다른 점은 걸을 때 느낌이 좋다는 겁니다. 왕복 2차선의 길 폭과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의 높이가 1:1로 같아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에서 걸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기자기한 상점과 맛집 등도 큰 역할을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조건이 가로수길에 사람을 불러 모으는 요인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 본격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1980년대 인사동에서 작은 화랑과 건축설계 사무소, 스튜디오, 영화기획사 등이 이전하면서 예술·문화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정욱준·임선옥·서상영·곽현주 등 패션 디자이너들이 쇼룸을 오픈했고 주변에 작은 옷 가게들이 생기면서 패션 소호 거리를 형성했다.

4년 전인 2007년에만 해도 가로수길의 의류 매장은 약 40개에 불과했다. 론 커스텀·히로시·칼 이석태·기센 by 곽현주 등이 대표 매장으로, 규모도 33㎡(10평)에 불과했다.

상점들이 들어선 것도 현대고등학교 맞은편 입구부터 제이타워가 있는 720m 직선 거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가로수길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메인 거리 외에 이면 도로가 개발되며 세로수길이 새롭게 탄생했다. 이후 포에버21·TNGT W·에이랜드 등 대기업 자본을 기반으로 한 대형 매장이 들어서며,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던 신사동은 초대형 편집숍과 화려한 플래그십 스토어의 집합소로 변모하고 있다.

친구와 자주 찾던 단골 플라워 카페는 글로벌 패션 매장으로 바뀌었고, 첫 데이트를 했던 와인바 역시 프랜차이즈 화장품 매장이 들어섰다. 각종 가방과 신발이 근사하게 디스플레이된 편집 매장은 3년 전엔 이야기 꽃이 피던 베이커리 카페였고, 그 전엔 누군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정겨운 단독 주택이었다.

 오 소장은 “대형 매장들이 들어서면서 예전 가로수길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안타깝다”면서 “추억이 없는 장소가 되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몇달이 채 지나지 않아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고 또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만의 스토리를 찾는 일이죠. 나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북적이는 가로수길도 각자에게 좋은 동네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① 대규모 카페 시대의 시작 - 커피 스미스

공사 중인 건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닥과 벽, 천장 모두가 콘크리트로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리창을 접으면 테라스가 돼 대로와 매장의 구분이 없는 독특한 공간이 된다. 건축가인 손태영 대표가 디자인·설계했고 운영도 직접하고 있다. 2009년 강남구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채로운 것은 1층 전체를 카페로 사용하지 않고 일부를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커피 스미스가 들어오기 이전인 2008년까지 이 곳은 가로수길의 유일한 유료주차장이었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1층 뒤쪽을 주차장으로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건축 허가가 나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주소 신사동 536-12번지 문의 02-3445-3372)

② 유럽 스타일의 이국적인 외관 - 에잇세컨즈

지난 2월 말 오픈한 SPA 브랜드 매장. 대로 안쪽에 있던 ‘티트리 호텔’과 대로변의 ‘네스카페’ 매장을 연결해서 만든 건물이다. 화이트 외벽에 다크 브라운 목재가 덧대어져 스위스나 동유럽 국가의 중세 건축물을 보는 듯 하다. 4개층을 연결해 샹들리에를 달고 자연광을 끌어들인 내부 역시 시선을 끈다. 에잇세컨즈가 생기기 전에 있던 티트리 호텔은 원래 가로수길의 유일한 숙박 시설인 ‘카프리 모텔’이었다. 이것이 리모델링을 통해 티트리 호텔’로 바뀌었는데, 이 호텔은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던 터여서, 폐점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 주소 신사동 535-12번지 문의 070-7090-1144~6 )

③ 오래된 단독주택 그대로 - 모던밥상

가로수길 메인 도로 중간 지점. 사람이 한 두명 지나갈 수 있을만한 작은 골목을 지나 들어오면 오래된 나무 문이 나온다. 나무 문을 열면 아담한 정원을 품은 모던밥상을 만나게 된다. 지난 2007년 오픈한 한식집으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로수길의 대표적인 맛집이자 터줏대감이다. 코스화된 한식을 일품 요리로 세련되게 내놓아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최근 글로벌 스타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가수 싸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30년 전에 지어진 단독 주택을 식당으로 만든 곳으로, 건축법에 의해 더 이상 개발할 수 없는 맹지를 한식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주소 신사동 545-20번지 문의 02-546-6782)

④ 가로수길의 변천사를 읽는다 - 디젤

건물 전체를 뒤덮은 블랙 스틸 마감재는 한눈에 봐도 눈에 띈다. 총 3층 413m²(125평) 규모로, 지난 9월 오픈했다. 가로수길과 어울리는 매장을 만들기 위해 디젤 본사에서 직접 내한해 설계에 참여했다. 디젤 플래그십 스토어는 건축가 오영욱이 꼽은 가로수길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 중 하나다. 이층짜리 단독 주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철골 기둥을 세우고 3·4층을 올려 증축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2층에서 3층ㅇ 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 철골 기둥을 확인할 수가 있다. 밖에서 볼 때는 하나의 네모난 박스형 건물이지만 주택가였다가 오피스 밀집 거리였다가 상업 지대가 된 가로수길의 역사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소 신사동 534-25번지 문의 02-541-9070)

⑤ 캔버스 같은 건축물 - 예화랑

1978년 인사동에 개관했던 예화랑이 1982년 신사동으로 이전했고, 이후 2005년에 기존 건물을 허물고 신축했다. 미술의 불모지였던 강남에 최초로 문을 연 화랑으로, 강남 지역에 화랑가가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건물은 2006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 2006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받았고, 2007년 젊은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세계적인 건축상인 AR 어워드를 수상했다.

 거대한 캔버스를 연상시키는 이 건물은 건축가 장운규씨가 설계에만 1년의 시간을 투자한 성과물이다. 7층 건물 중 1·2층은 갤러리로, 나머지는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비정형 건물에는 잘 쓰지 않는 베이스 패널(시멘트 압축 패널)을 과감하게 외장재로 쓴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선으로 꺾여 디자인된 벽면은 빛에 따라 건물의 표정을 바뀌게 한다. ( 주소 신사동 532-9번지 문의 02-542-5543)

글=하현정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 일러스트=심수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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