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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싸우다가 … 의정비 올릴 땐 악수하는 지방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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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기도 부천시의회는 후반기 상임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으로 7월부터 20일간 회의를 열지 못했다. 선출된 상임위원장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데 이어 의원끼리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하지만 부천시의회는 최근 내년도 의정비를 올해보다 5.6% 올렸다. 부천시 의회의 내년 의정비는 4600만원이 된다. 부천시 의회 한 의원은 “4년간 의정비를 동결한 반면 물가는 해마다 뛰고 있기 때문에 의정비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전국 244개 지방의회 가운데 60여 곳이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추진 중이다. 이들 지방의회는 “최근 몇 년간의 물가인상률과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감안해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초와 광역의회 구분 없이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말 공무원 임금인상률을 고려해 의정비를 인상해 달라는 요구안을 시에 보냈다. 인상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경기도 의회는 최근 의정비를 8.6% 인상해 달라는 요구안을 경기도에 넘겼다. 이 같은 요구안이 반영될 경우 경기도 의회 의정비는 6482만원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 된다. 강원도 의회도 31일 올해보다 3% 오른 5044만8000원을 내년도 의정비로 결정했다.

 의정비 인상을 결정했거나 추진 중인 의회 중 상당수는 의장단 선출을 둘러싼 감투싸움 등으로 파행 운영을 빚었던 곳이다. 파행 운영을 마감하고 의회를 재개하자마자 의정비 인상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일은 하지 않고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 안양시는 지난달 말 의정비 3.5% 인상안(4514만원)을 확정했다. 안양시의회는 7월 의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한 달가량 회의를 열지 못했다. 아주대 강명구(행정학) 교수는 “의정비 결정 과정에서 한 해 동안 의정활동을 평가하고 이를 반영해 동결이나 삭감 등의 페널티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는 지방의회 상당수가 규정을 어기는 것도 문제다. 의정비 심의 과정에서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시행한 주민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천시의회는 지난달 19~22일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인상률 7%에 대해 적정 여부를 물은 결과, 63.8%가 높다고 답했다. 주민들이 제시한 적정 의정비는 올해(4356만원)보다 낮은 3964만원이었다. 하지만 의회는 이 같은 결과를 무시했다.

 현행 지방자치법 시행령 34조 6항에 따르면 의정비를 결정할 때는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결과를 반영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반영을 하지 않을 경우 제재할 규정이 없는 점이 문제다. 행정안전부 안승대 선거의회과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의정비를 인상한 지방의회에 대해선 재의 요구를 하고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유길용·최모란 기자

◆의정비=의정자료 수집·연구비와 보조활동비, 월정수당으로 이뤄져 있다. 지방의원 1인당 주민 수와 지자체의 3년 평균 재정지수 등을 적용해 금액을 산출하고 의정활동비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심의위는 교육·법조·언론·시민단체 대표 등 10명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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