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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스펙보다 스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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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대기업은 “쓸만한 인재가 없다”며 난리고, 중소기업은 “오는 인재가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에게 기대는 현실이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대선 후보들은 불만을 달래느라 온갖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중앙일보 기자들과 만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졌다. 그는 대학 시절 벤처를 세워 29년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인물이다. 조 회장은 “수도권 대학 졸업생의 87.6%가 B 학점 이상을 받고, 토익·토플 점수를 높이는 요령이 판치는 세상”이라며 “스펙 준비는 당장 그만두고 스킬(기술)을 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들이 스펙보다 스킬과 능력을 보고 뽑는 마당에 자꾸 스펙 쌓기에 치중하니 ‘이태백’이 양산된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똑같은 홍역을 치르고, 선진국일수록 청년실업률이 높다. 최근 국내에선 청년 실업의 책임이 자신의 탓이라는 응답이 17%, 나머지는 정부·대학·기업의 책임으로 돌리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이 통계를 소개한 조 회장은 “언제까지 청년들을 어를 것인가”라며 “정치권이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피해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실업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한 청년 실업의 해결은 어렵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현재 일자리의 80%는 30년 전에는 없던 일자리”라며 “청년들이 스펙 준비에서 벗어나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과감히 도전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구도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인생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청년 세대가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멈춘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이에 걸맞은 인재가 들어가지 않아도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 ‘신의 직장’인 공기업 신입사원들의 3년간 이직률이 43.9%로 중소기업(25.1%)보다 높다(한국직업능력개발원 표본 조사). 고용시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왜곡된 현실을 외면한 채 허울뿐인 청년인턴제나 취업준비금을 약속하는 것은 일시적인 마취제를 투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좋은 일자리에 맞는 스킬이지 ‘백수 수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