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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실패한 청년 비례대표제, 누가 책임질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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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양원보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2월 25일 경기도 파주 홍원연수원에선 민주통합당 25~35세 청년 비례대표 본선 진출자들이 합숙을 했다. 슈퍼스타K 방식을 본뜬 거다. 당 상임고문이던 이해찬 대표가 본선 진출자들 앞에 섰다. 사회자는 “청년 비례대표제를 처음 기획하신 분”이라고 이 대표를 소개했다. 이때 민주통합당의 슈퍼스타K로 뽑힌 이가 김광진 의원이다.

 ‘명박 급사’(急死·이명박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란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한 퍼포먼스를 벌인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회원들을 향해 “나이를 처먹었으면…”하는 막말을 하고, “여자친구 생기면 엄마가 시내에 아파트를 사준대요” 같은 돈 자랑부터 “다음에 술 먹을 때 채찍과 수갑 꼭 챙겨오길. 간호사복하고 교복도” 같은 변태적 성적 취향을 암시하는 글까지 적은 장본인 말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과거 글이 문제가 되자 지난 26일 “문재인 후보 선대위의 모든 보직(청년특보실장 등)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정감사장에서) 백선엽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부른 데 대한 보수진영의 비열한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막말 사과 요구에 엉뚱한 ‘보수 음모론’을 들이댄 거다.

 29일엔 라디오에 나와 “공인의 신분에서 했다면 온당한 발언이 아니지만 의원이 되기 전에 한 일이었다”거나 “트위터라는 공간은 기본적 해학과 풍자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까지 했다.

 결국 지도부가 대신 사과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수차례 김 의원에게 자숙하라는 내부 경고를 했음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경고를 했다”며 “굉장히 송구스러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한 동료 의원은 “대선 때까지 아예 (김 의원을) 연수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사실 김 의원 사태를 겪기 전부터 청년 비례대표제가 성공작이었다고 말하는 민주통합당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2030세대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그들을 대변한다고, 인위적으로 2030세대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마련한다고 초등생에게 금배지를 달아줄 순 없는 것 아닌가.

 김 의원도 억울할 순 있다. ‘명박 급사’를 아무 생각 없이 리트윗하던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자신이 국회의원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따지고 보면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던 김 의원에게 ‘정치적 로또’를 안겨준 민주통합당의 ‘청년 비례대표제’를 탓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양원보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