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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책 배경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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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둘만 낳아 잘 기르자'→'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이제는 좀 더 낳자'.

이 같은 가족계획 표어 변천사는 정부의 인구정책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잘 보여준다. 정부는 90년대 중반까지 "덜 낳자"고 호소했으나 이제는 그 방향을 바꿀 태세다.

정부도 그간 저출산 추세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긴 했으나 인구정책의 큰 줄기는 바꾸지 않았다. 사석에서 인구정책의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는 장관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정책 당국자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더욱이 '출산장려'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많은 돈을 들여도 실제 출산을 장려하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노동력 감소도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일부 비판적인 의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산율이 선진국 수준으로 급락하고 노인 인구가 전체의 7.9%(2002년)에 이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가 '인구 및 가족지원 종합대책'을 서둘러 마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 변화의 배경과 의미=보건복지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면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 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70년 4.53명에서 90년 중반 1.5명대로 떨어진 데 이어 2001년엔 1.3명으로 줄었다. 이는 인구가 줄지 않는 대체수준(2.1명)에 못미칠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1.7명)보다 낮은 것이다.

반면 65세 노인 인구가 전체의 7.2%를 차지하면서 2000년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통계청은 2019년에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4%를 차지해 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가는 데 19년 걸리는 셈인데, 선진국이 40~1백15년 걸린 데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2015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에는 2000년(3천3백70만여명)보다 9백여만명 가량 줄어든 2천4백40만여명이 될 전망이다. 대신 노인 인구는 전체의 34.3%로 올라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전 연구위원 이혜훈 박사는 "출산율 저하.고령화가 저축률 감소→가용자본 축소→투자위축→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인 부양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지난해에는 1백명의 생산가능 인구가 노인 11.1명을 부양하면 됐으나 2020년에는 21.3명을, 2050년에는 62.5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만큼 후세대의 부담이 엄청 커지는 것이다.

또 출산율이 떨어져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대학 신입생 수가 줄고 있고, 현역장병 수도 줄 것으로 예상돼 정부가 대책마련에 나서는 등 사회 전체에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향후 과제=보건사회연구원 변용찬 사회정책연구실장은 "이런 추세로 간다면 젊은 인구가 줄고 연금을 탈 사람은 늘어나 사회 활력이 크게 떨어진다"면서 "인구정책의 효과는 20~30년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출산장려정책의 시행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보건복지부 사무관 한 명이 인구정책을 맡을 게 아니라 인구정책과나 국(局)을 신설할 것을 권고했다.

반면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시백 교수는 "여성노동력을 활용하고 남북통일 후 북한 인구가 노동시장에 흡수될 것을 가정하면 노동력 수급에 차질이 안생긴다"면서 "출산 장려책은 부작용이 더 많기 때문에 이미 태어난 아이의 양육 서비스 질을 강화하는 게 낫다"고 반박했다.

신성식.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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