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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북한 핵 어떻게 봉쇄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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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오는 10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다. 일본 총리가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는 것은 5년 만이며 두번째다.

이 회담에서는 일.러간 영토문제와 함께 북한 핵 문제가 또 하나의 큰 주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갖게 해선 안된다는 데 현재 일.러 양국의 입장은 일치한다.

만약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은 와해된다. 일본에서는 미.일동맹의 가치와 효용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또 한.일 모두 상대방 국가가 핵 개발을 추진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일종의 '보험'성격으로 핵을 포함한 군사력 확대에 나서게 될지 모른다.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지역은 다시 요새화할 것이 틀림없다.

또 미국은 스타일을 완전히 구기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미국 벗어나기', 미국의 '아시아 벗어나기'가 시작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는 미라와 같은 잔해로 남게 될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1993~94년 당시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번에는 벼랑끝에 몰려도 지미 카터가 없을 것이란 점이다.

이제는 북.미 이외의 다른 주변국이 조용한 외교를 통해 국면 타개를 모색할 시점으로 보인다.

북한이 무조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한다는 전제하에서 러시아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가하고, 이후 북.미간 합의를 소생시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KEDO에 중·러 참여시켜라

말하자면 KEDO를 재편하자는 것이다.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도 참여한다면 금상첨화다. 중국은 현재까지도 북한에 식량과 연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KEDO와는 별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북.중간 연료지원을 KEDO의 울타리 속에서 다국간 지원의 일환으로 엮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KEDO는 한.미.일.중.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 기구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북한은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체제유지'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와 함께 에너지 지원에서 다국간 협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또 미국의 압력 완화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이 이에 응할 것인가.

부시 정권 내 매파와 공화당 안에는 북.미간 기존 합의나 KEDO를 모두 던져버리고 아예 북한 체제를 말살시키자는 세력도 있다. 최선의 비핵화정책은 체제 전환이라는 시각에서다.

그러나 북한과 정면대결에 나설 경우 북한의 핵무기 재개발 가속화, 북한의 돌발적인 행동, 북한의 대량 난민 등의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 어떤 경우에도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정면대결해서 발생하는 비용은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보다 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쟁은 결코 옵션이 될 수 없다. 현재 서울에는 3만7천명의 미군이 매일 밤 화생방 마스크를 곁에 두고 잠든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결국 미국도 포용정책으로 돌아설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북한의 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개발계획의 폐기가 전제돼야 한다.

KEDO는 미국이 포용정책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성맞춤인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KEDO는 단순한 에너지 공급기관이 아니다. 북한과의 사이에 있는 정치적 커넥션이다. 그리고 북한의 체제유지를 암묵적인 양해사항으로 하고 있다.

*** 체제전복보다 연착륙을

미국이나 일본의 강경파들도 정면대결시의 리스크와 정면대결하지 않을 때의 리스크를 주의 깊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 통일 후 어떤 국가가 이곳에 탄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점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서히 북한을 개혁.개방시키고 경제를 비군사화시켜 다원적인 이해.관심계층을 만들어 내는, 연착륙 시나리오를 추구해야 한다.

한.미.일은 중.러의 KEDO참여를 돌파구로 해 KEDO를 재편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단념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번 일.러 정상회담은 그를 위한 최초의 기회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 양국도 정책협조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약력=도쿄대 졸업,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 아사히 신문 베이징특파원, 워싱턴 총국장 역임, 현재 칼럼니스트.특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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