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야생초 편지』의 그가 10년 만에 보낸 풀빛 소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산에서 농사 짓는 황대권씨에게는 모든 일이 명상과 같다. 누군가 놓고 간 부채 위에 ‘일 벌이지 말라.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라고 쓰여 있다. [사진 도솔출판사]

고맙다 잡초야
황대권 지음, 도솔출판사
288쪽, 1만3000원

2002년 화제가 됐던 『야생초 편지』의 지은이가 10년 만에 낸 생태 에세이집이다. 『야생초 편지』는 서울대 농대 출신의 젊은이가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13년간 수감생활 중 우연한 계기로 눈 뜬 자연의 경이로움과 삶에 대한 성찰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출간 당시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사랑을 받았다.

 이번 책은 그 이후 이야기다. 지은이는 전남 영광의 인적 드문 산속에서 컨테이너에 기거하며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기구한 역정을 거쳐 별난 삶을 사는 만큼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색다르기도 하면서 울림이 크다.

 “대개 노래를 잘 하려고 의지를 앞세우다 보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듣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진실한 소리는 아무리 작더라도 반드시 공명을 일으켜 그 파장이 널리 퍼져 나간다. ‘진실함’이 강한 이유는 상대를 무장해제시키기 때문이다. 무장해제를 시킬 뿐 아니라 상대의 자발적인 반응도 이끌어낸다.”

 저자가 원주 한알학교에서 열린 느티나무 음악회에서 ‘평범한’ 가수 한보리의 노래를 들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삶에서 길어낸 생각이 웅숭깊기도 하지만 역시 이 책의 귀함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서 오는 성찰이다. 수많은 명상 방법 가운데 ‘장작불 명상’을 최고로 친다며 그 방법을 소개하는 대목이 그렇다.

저자가 직접 그린 장작 패기 명상 그림.

 머릿속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심사가 뒤틀려 있어도 한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차분해진단다. 한데 이게 간단치 않다. “먼저 장작을 마련하기 위한 도끼질을 통해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충분히 근육을 풀어준” 다음이라야 효과적이어서다.

 글은 대부분 생태 교양잡지에 실렸던 것이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일화도 등장한다. 한여름 땀에 젖은 옷을 빨래하기 귀찮아 홀딱 벗고 농사를 짓다 ‘급소’를 벌에 쏘여 쩔쩔 맨 일이며 “땅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일체감을 느낀 숲속에서의 ‘인도식 똥누기’ 등이 그렇다.

 지은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말로는 밥을 지을 수는 없다”는 중국 속담이지 싶다. 귀농희망자들에게, 아니 모든 현대의 도시인에게 “도시에서라면 ‘관념’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이곳은 ‘경험’이 없으면 앉아서 굶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 땀의 가치, 자연의 소중함과 더불어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