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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는 내 자신에게 쓰는 편지같은 작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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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신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의 대표작 '이웃의 토토로'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이 작품은 시골에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 자매와 숲의 정령 토토로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한·일 문화 교류의 제한 때문에 제작한 지 무려 13년 만에 정식으로 한국 땅을 밟은 작품이다.

25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첫 인상은 성성한 백발과 얼굴을 반쯤 뒤덮은 흰 수염에 커다랗고 까만 뿔테 안경을 쓴, 그야말로 넉넉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번 방문은 일본서 개봉된 그의 최신 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작에 참여했던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 'DR무비'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그의 생애 첫 한국 나들이 이다.

더욱이 이번 방한은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로 인한 한·일 양국간 관계가 악화된 시점에 이루어진 것이라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에 관해 "정치 세계에서는 여러가지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양국간의 문화적 교류는 계속돼야 된다"고 자신의 입장을 간단하게 피력했다.

2백 여 명이 기자들의 열띤 취재 속에 진행된 질의 시간 동안 그는 시종일관 침착한 모습으로 농담까지 섞어가며 비교적 짤막하게 답변했다.

우선 그에게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묻자 "지구 상에 이렇게 (일본과) 똑 닮은 모습을 한 나라도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하면서 "버스가 너무 많아 놀랐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실 그는 '원령공주'를 끝으로 은퇴 했으나 그의 후계자였던 콘노 요시후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지브리 스튜디오에 복귀, 12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이번 작품을 끝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식적인 은퇴는 아니다. 그는 현재 오는 10월 개관할 '지브리 미술관'을 위해 3편의 단편을 제작 중이다.

한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참석한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씨는 "미야자키 감독은 결코 다른 사람의 영화를 칭찬하는 법이 없다. 만약 그가 칭찬을 하게 된다면 그때가 은퇴하는 시점일 것이다. 아, 오해는 말라. 감독이란 원래 모두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으니."라고 덧붙여 좌중에 웃음을 선사했다.

38년 동안이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그에게 '애니메이션은 전혀 즐겁지 않은 힘든 작업'이다. (일례로 개인적으로 친한 안노 히데야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TV방영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미야자키 감독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곧 영화로 만들자는 말이 나올 테니 도망쳐라!'라고 말했다니 그 고된 정도를 짐작케 한다.) 매 작품을 만들 때 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일한다는 그지만 아이들이 작품을 보며 재미있어 하는 모습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그지만 안노 히데야키 같은 후배에 대해 "잘 만들긴 했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애니메이터지 감독이 아니다."라며 조금 '짠' 평가를 내렸다.

예순이 되었지만 40년 전 상상했던 일과 어제 생각한 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며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TV용 애니메이션보다 한 컷 한 컷 더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극장용 제작을 선호한다는 그의 말에 진정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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