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진국 생명공학현장] 유전자지도 ③

중앙일보

입력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된 지 5개월이 지나면서 그동안 제시됐던 장밋빛 청사진들이 현실성이 없거나 적어도 먼 미래에나 가능한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영국의 게놈(유전체) 전문가들은 게놈지도를 둘러싸고 빚어진 이런 거품현상의 이면에는 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 뿐 아니라 연구재원과 투자금을 유치하려는 일부 과학자와 바이오벤처들의 삐뚤어진 의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NCI)의 유전자제어 연구그룹 책임자인 김성진 박사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도 그것이 질병 등 생명현상과 관련됐을 경우 그 의미와 영향을 과장또는 예단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 인간 게놈지도 완성이 질병 치료 측면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전문가도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러나 게놈지도가 짧으면 10년, 길면 50년 이후의 의학에 현재 기준으로는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결국 게놈지도는 인류 의학혁명의 시발점임에는 분명하지만 현 시점에서 각종질병의 치료법이 언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의미도 없으며 어떤 질병에 대해서도 향후 수년 이내에 환자에게 포괄적으로 적용할수 있는 획기적 유전자 치료법이 등장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와 미국의 `사이언스''가 게놈지도 완성을 발표하면서 질병과 관련해 내놓은 분석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이언스는 셀레라의 게놈지도를 발표하면서 "게놈시대는 질병유전자를 찾을 수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인간 게놈지도 완성으로 질병유전자 검사법이 향상돼 질병 예방법이 크게 발달하고 환자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맞는 맞춤치료도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네이처는 HGP의 게놈지도를 발표하면서 암과 관련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는 것은 앞으로 암 연구의 핵심"이라며 "그러나 이미 알려진 종양억제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인간 게놈지도에서 암 관련 단백질을 찾은 결과 어떤 새로운 유전자도 찾을 수 없었다"며 질병유전자 탐색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하지만 게놈지도를 활용해 각종 질병치료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먼미래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게놈정보가 당장 암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무용지물은 아니다.

NCI의 김성진 박사는 "암 등 각종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가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고 게놈지도 정보를 활용해 면역요법, 유전자요법, 세포치료법, 백신 등을 개발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연구의 성과를 현재 사용하는 치료법과 결합시키는 것이 당분간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특히 "암 세포의 게놈을 분석해 유전적 특성에 따라 분류하면 같은암에 걸린 환자들에 대해서도 가장 치료효과가 좋은 약과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어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게놈 또는 유전자와 관련해 떠올리는 질병유전자를 정상유전자로교체하는 식의 유전자 치료법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실용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유전자 치료법은 돌연변이나 환경적 요인 등으로 유전자에 이상이 발생, 질병에 걸리거나 걸릴 위험이 높을 경우 잘못된 유전자를 정상적인 유전자로 대체하는것으로 현실화하기에는 아직 극복해야할 과제가 너무 많다는 분석이다.

우선 치료유전자를 이상이 발생한 질병유전자가 들어있는 세포의 게놈 속으로주입하기 위해 현재는 주로 바이러스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 바이러스가 독성이나 면역 또는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등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또 아직 질병유전자를 모두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전자의 기능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고 유전자 치료법의 임상시험에 대한 규제도 엄격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또 유전자 치료법을 둘러싼 윤리논쟁도 유전자 치료법의 실용화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이 문제는 학문적 장애물과는 달리 과학계는 물론 사회를 구성하는각계각층이 함께 참여해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특히 유전자 치료법이나 유전정보를 이용한 질병 예방법이 실용화될 경우 유전자 정보가 기업체나 보험사 등으로 흘러 들어가면 게놈정보는 결국 인종이나 성별처럼 사람을 차별하는 또 하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이밖에 게놈정보가 인류의 질병정복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바로 신약개발 부분이다. 지금까지 하나의 신약이 시장에 나오기 위해서 15년 간 5억달러가 투입돼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게놈지도 완성과 포스트 게놈 연구를 통해 유전자의 기능과 각종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등이 밝혀지면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것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약을시판하는 것까지 기간과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생명공학연구원 박홍석(朴洪石.40) 박사는 "신약 개발에 게놈정보를 활용하는 연구는 세계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수행되고 있다"며 "우리 나라도 게놈정보를 질병정복의 지름길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연구 기반을 하루 빨리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데스다<美 메릴랜드주>=연합뉴스) 이주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