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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자 평균 키는 일본인보다 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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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라와 기생충을 매개로 예전 우리의 생활상을 밝혀온 신동훈 교수. “내가 하는 일은 발굴현장의 시료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선시대 한양 중심가는 분뇨가 널려있는 지저분한 거리였다.”

 “조선시대 남자의 평균 키는 161㎝로, 일본인보다 6㎝ 컸다.”

 “조선 사람들 중 결핵환자는 많지 않았지만, 기생충 감염률은 꽤 높았다.”

 최근 몇 년 새 밝혀진 조선시대의 생활상이다. 이 같은 연구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 의대 인류학 및 고병리 연구실의 신동훈(46) 교수다.

 고병리학이란 미라나 동물 화석 등을 통해 과거 인류의 건강과 위생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고학과 의학의 결합이다. 미국·프랑스 등에선 고고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10여 년 전에 연구가 시작됐다.

 신 교수는 “예전엔 사람들의 관심도 적고, 연구 노하우도 거의 없었다. 최근 학제간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경기도 양주군 해평 윤씨 무덤 이장 과정에서 발견된 소년 미라 ‘단웅이’는 한국의 고병리학 연구를 촉발시킨 계기였다. 서울대 의대에서 해부학을 전공하고 신경과학을 연구해 온 신 교수도 단웅이 연구를 시작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원래 고고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해당 분야 학자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게 됐죠.”

 2002년 세계 최초의 임산부 미라인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가, 2004년에는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학봉장군 미라’ 등이 발견되면서 미라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고, 관심 있는 학자의 연구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최근 화제가 된 조선시대 한양 중심가의 위생상황에 대한 연구는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의 서민 교수팀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다. 기생충의 알 껍질은 딱딱한 재질로 돼 있어 수백 년이 지나도 흙 속에 남아 있다. 연구팀은 4~5년 전부터 전국 각지의 유적발굴 현장 등을 돌며 과거 지층에서 흙을 채취해 기생충 알의 분포 정도를 분석해 왔다.

 이 중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 현장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자리 등에서 채취한 조선시대 흙에서 회충과 편충, 간디스토마 등 각종 기생충 알이 다량 발견된 것이다.

 “당시 한양에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인분 수거가 제대로 안 됐고,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도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근대 도시에서의 위생문제는 비단 한양뿐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 교수는 연말께 전국 발굴현장에서 나온 기생충 알을 분석한 종합결과도 내놓을 예정이다. “ 추측으로만 존재했던 조상들의 생활상을 과학적으로 되살리고, 거기서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게 제 연구의 의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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