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3탄, 사과는 없었다…역풍 부른 박근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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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5·16, 유신에 이은 과거사 논란 3탄 격인 정수장학회 문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응은 예상 외의 강공이었다. 애초엔 사과나 유감 표명이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최필립(84) 이사장의 거취에 도 분명한 입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박 후보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가 고(故)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 재산을 빼앗아 만들어졌다는 야권 주장에 대해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헌납한 재산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독지가, 해외동포들까지 많은 분의 성금과 뜻이 더해져 만들어졌다”고도 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김씨에 대해선 “4·19 당시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고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했다”며 “5·16 때도 부패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받았으며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헌납할 뜻을 밝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최근 정수장학회가 MBC·부산일보 주식을 매각하려 했던 사실이 공개된 뒤 야권이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공격한 데 대해선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받아쳤다. 박 후보는 9분의 연설 동안 6분 이상을 야권의 주장에 대한 반박에 할애했다. 지난달 24일 회견에서 5·16, 유신 등 과거사에 대해 “헌법 가치의 훼손”이라며 고개를 숙였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그의 회견 내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기류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장학회 태동 과정에 대한 설명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가 많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역사인식”이라고 말했다.

 회견 준비도 치밀하지 못한 구석이 엿보였다. 장학회 설립 과정을 설명하던 박 후보는 “(1심)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원고(김씨 유족)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가 회견이 끝난 뒤 다시 “잘못 말한 것 같다”고 번복했다. 회견 내용은 박 후보와 극소수의 참모진만 빼놓곤 캠프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돈 정치쇄신특별위원은 “강압성 여부는 팩트의 문제인데 오히려 야당에 빌미를 줬다”고 말했다.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의 거취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최 이사장과 이사진에 “스스로 해답을 내놓길 바란다”는 선에서 정리했다. 이에 최 이사장은 “지금 이사장직을 그만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퇴 거부여서 박 후보의 회견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이날 회견은 결과적으로 정수장학회 논란을 더욱 확산시킬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 진성준 대변인은 후보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털어내도 상관없을 텐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중도층 지지 확보에도 부담을 줄 듯하다. 그동안의 과거사 사과 발언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 핵심 지지층을 제외하고 외연 확대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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