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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000만 … 광대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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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대 하선(이병헌)은 정치에 눈을 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려 한다. [중앙포토]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광해, 왕이 된 남자’), “양반도 싫다. 왕도 싫다. 다시 태어나도 광대로 태어날란다.”(영화 ‘왕의 남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이하 ‘광해’)가 20일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개봉 38일 만이다. 역대 7번째 1000만 영화에 올랐다. ‘광해’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진 광해의 15일간의 행적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작품이다. 2005년 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 감독·1230만)에 이어 팩션사극으로선 두 번째 1000만 영화가 됐다.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조선시대의 폭군으로 인식됐던 두 임금, 연산과 광해를 끌어들였다. 또 그 군주의 대척점에 신분이 가장 천한 계층이었던 광대를 배치시켰다. 지극히 영화적인 설정이다. 왕이 부럽지 않은 광대 장생(감우성·‘왕의 남자’), 왕보다 더 왕 같은 광대 하선(이병헌·‘광해’)을 통해 정치의 존재이유를 질문했다. ‘권력=백성’이란 통치의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을 대비시켰다.

‘왕의 남자’의 광대 장생(감우성·아래 사진)은 연산을 모성에 굶주린 한 인간으로 끌어내린다. [중앙포토]

 ◆광대의 정치놀음=‘왕의 남자’의 광대 장생은 정치적으로 고립된 연산의 왕권 강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연산은 장생 광대패의 탐관오리 풍자극을 보면서 간신들을 처단한다. 폐비 윤씨를 연상케 하는 풍자극에 연산의 광기가 극에 달하면서 궁중 암투는 더욱 거세진다.

 ‘왕의 남자’의 궁중안 광대놀음에선 누가 왕인지, 누가 광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왕이 광대에게 마음속 상처를 위로받기도 한다. ‘징한 놈의 이 세상, 한바탕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라는 대사에선 수평화되는 권력관계가 담겨있다.

 ‘광해’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광대가 진짜 왕이 된다. 하선은 암살위협에 시달리던 광해 대신 왕좌에 앉지만 꼭두각시에 그치지 않는다. 대동법 등 민생현안을 공부하고, 명분과 정파 이익에만 골몰하는 기득권 세력을 꾸짖는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풍자와 해학으로 서민의 한을 풀어주던 광대가 왕과 대등해지거나(‘왕의 남자’), 왕보다 뛰어난 정치력을 펼치는(‘광해’) 것에서 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임금과 광대의 권력관계를 비튼 두 편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은 대중정치의 영향력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광해’에서 광대 하선의 정치적 자각과 발언은 인터넷 댓글에서 트위터로, 점점 커져가는 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와 현실정치=‘광해’의 흥행에는 대선을 3개월 앞둔 개봉 시점도 큰 몫을 했다. 리더십이란 화두에 정치권도 솔깃했다. 문재인·안철수 두 대선 후보가 관람했고, 인터넷에선 특정 정치인이 떠올랐다는 반응도 많았다. 추창민 감독은 “(대선에서) ‘누가 됐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누가 돼도 이랬으면 좋겠다’에 대한 영화”라고 밝혔다.

 ‘왕의 남자’도 개봉 당시 정치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하들이 자신의 의견을 계속 묵살하자 “내가 왕이 맞느냐”고 탄식하는 연산의 모습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처한 정국 상황이 연상된다는 촌평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영화관람을 놓고도 정치권 일각에선 “자신을 약자로 묘사하려는 전략”이란 분석까지 있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은 “비극적인 두 왕의 드라마틱한 삶 자체가 좋은 영화적 모티브가 됐다”며 “정치적 의도는 감독이 만드는 게 아니라 시대가 읽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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