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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 칼럼] “세계경제, 나한테 묻지 마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3호 34면

“뜻밖의 수상 이후 며칠 동안 몰려든 언론 인터뷰가 내 육십 평생 해 온 인터뷰를 다 합친 것보다 많네요.”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앨빈 로스(61) 하버드대 교수는 쏟아지는 언론 인터뷰에 손사래를 친 일이 많다고 한다. 자신도 잘 모르는 ‘거대 담론’을 요구할 때였다. ‘유럽 재정위기의 향배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 경제의 내년 전망은?’ 이런 식의 무겁고 골치 아픈 내용을 잔뜩 담은 사전 질문지를 받으면 대개 ‘노(No)’였다. ‘실험경제학ㆍ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심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로스 교수 같은 미시 경제학자는 물론, 글로벌 경기나 나라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본업인 거시 경제학자들조차 미래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곤 한다. 사실 극도의 불확실성과 살얼음판 분위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또 교역·금융의 국경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한 나라 나아가 세계경제를 제대로 예측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초대형 위기 조짐을 감지조차 못하고 위기 발발 후에도 이렇다 할 처방을 내놓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면서 ‘경제학 무용론’이 날로 힘을 얻었다. 불황을 어쩌지 못하는 통화ㆍ재정 정책은 조롱거리가 됐고 경제성장률이나 주가를 맞히는 일 역시 부질없는 짓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최근 노벨경제학상의 추세도 ‘매크로’보다는 일정 범위 안에서 설명력을 갖고 사회·경제 시스템 개선에 이바지하는 ‘마이크로’ 이론 쪽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20세기 내내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폴 새뮤얼슨)’으로 군림했다. 정치경제학, 심리경제학, 문화경제학처럼 다른 학문에 ‘경제’라는 말만 붙이면 제법 학문이 됐다. 경제가 간여하는 학문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학자들 간엔 이런 농까지 오갔다. “경제학을 정의한다면?” “경제학자들이 하는 학문이 경제학이지 뭐.”
요즘 만능의 학문, 여왕의 학문은 ‘음울한 학문(Dismal science, 토머스 칼라일)’이란 소리를 듣는다. 맬서스 인구론의 배경이 된 19세기의 비관적 시대상황에서 나온 말이지만 요즘은 위기 예측·처방에 속수무책인 경제학의 초라한 위상을 일컫게 됐다. 영국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를 포함한 영국의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은 2009년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점에 사죄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경제모형과 수리의 틀에 갇혀 현실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도 나왔지만 여태껏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의 현실 정합성(整合性)이 떨어지다 보니 경제학자의 정책 참여도 예전 같지 않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경제부처 개각 때면 청와대 전화를 기다리는 교수가 주변에 더러 있었는데 요즘은 아예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아요.”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어느 교수의 얘기다.

경제학과 대조적으로 상승 무드를 타는 것이 경영학이다. 보통 사람에게 경제학은 어렵고 추상적인 학문, 경영학은 배우기 쉽고 현실적인 학문이란 인상을 준다. 웬만한 종합대학의 교원 수만 봐도 경영학 교수가 경제학 교수의 두 배를 웃돌게 됐다. 경영학과 학생에다 복수전공이나 선택과목으로 경영학을 배우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경제학과 출신이 그런대로 취직이 잘되는 건 사회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의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가운데 경제학자가 상한가를 올리는 곳이 있다. 12월 대선에 나선 대선 후보들의 캠프다. 각 후보마다 중진 경제학 교수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해 홍보전에 앞세운다. 정치판인데도 정치학자들의 기세가 눌릴 정도다. 경제가 그 무엇보다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이 많다니 제발 능력을 십분 발휘해 고단한 경제를 살린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 김에 떨어진 경제학의 위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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