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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60> 미국인 달시 파켓의 한국영화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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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명절에 고향 가듯 매년 찾다보니 부산도 많이 익숙해졌다.

나는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1997년 처음 한국에 온 나는 이듬해 ‘8월의 크리스마스’ ‘넘버 3’ ‘처녀들의 저녁식사’ 같은 수작을 만나면서 한국영화에 매료됐다. 99년엔 마음이 맞는 한국영화 팬과 내가 아는 걸 공유하고 싶어 ‘Koreanfilm.org’라는 영문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취미는 이내 열정이 됐고, 급기야 직업이 됐다. 2001년 영국 영화잡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이 내게 한국영화산업 취재를 의뢰했고 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영화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 내가 한국영화에 꽂힌 계기는 명확했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었고, 한국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웹사이트를 통해 정반대 경우를 자주 만났다. 외국에 살고, 한국과 전혀 연고가 없어도 한국영화에 매료된 이들이다. 호주나 싱가포르, 혹은 미국 플로리다의 평범한 사람이 어떤 한국영화를 발견하고 그 영화의 감독이나 배우에게 흥미를 느껴 또 다른 한국영화 DVD를 주문한다. 바로 이게 한국영화의 강력한 힘이다.

알음알음 영화에 출연하다보니 어느새 출연작이 여러 편이 됐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서는 미국 문화원장역(왼쪽)을 맡았다.

웹사이트를 15년째 운영하다 보니 한국영화에 대해 묻는 e-메일도 자주 받았다. 이런 질문도 있었다. “한국영화에 자주 출몰하는 녹색 병은 대체 뭐죠?” 아마도 소주병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 속 이미지는 관객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때조차 관객은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했다.

한국영화에의 관심이 실제 장소에 대한 열망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를 테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본 사람은 절대 맨숭맨숭한 기분으로 한강을 바라볼 수 없다. 징그러운 괴물이 활보하던 무대를 마주한 순간 짜릿한 전율을 느낄 게 분명하다.

내 경우 한국영화를 접한 횟수만큼 한국에 대한 시각이 다채로워졌다. 그걸 뼈저리게 절감한 영화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다. 이 영화는 무력한 경찰과 야망에 불타는 검사와의 괴리를 지극히 ‘한국적’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이 자아내는 팽팽한 긴장감과 얽히고 설킨 그들의 인간관계를 지켜보며, 내 뇌리에 남은 건 빼어난 영화 한 편만이 아니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일면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 아닐까.

봉준호 감독의 재난영화 ‘괴물’ 이후, 한강은 전에 없이 흥미로운 공간이 됐다.

한국의 어떤 영화 감독은 한국사회를 어둡고 폭력적으로 조명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도 그중 한 명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영화가 해외에 한국에 대한 나쁜 고정관념을 심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그의 2002년 영화 ‘나쁜 남자’가 가장 유명한 예일 것이다. 영화는 한 남자가 여대생을 납치해 매춘부로 만드는, 아주 어두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가 만난 유럽과 미국 사람은 대부분 김기덕 감독의 강렬한 독창성에 이끌려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충격적인 자해 장면으로 논란이 된 2000년 영화 ‘섬’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최근작 ‘피에타’는 올해 같은 영화제에서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렇다고 ‘피에타’가 전에 없이 밝은 내용이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분명한 건 ‘피에타’를 통해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감사해야 한다. 재능 있고 특별한, 심지어 살짝 미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열정적인 영화인이 한국에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화에 담긴 그들의 꿈과 비전, 통찰력은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무한한 잠재력마저 갖고 있다. 그게 바로 한국영화의 저력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달시 파켓(Darcy Paquet)

1971년 미국 출생. 97년 영어교사로 처음 한국에 왔다. 98년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이듬해 한국영화 영문 웹사이트 ‘Koreanfilm.org’를 열었다. 해외 영화잡지 ‘스크린인터내셔널’과 ‘버라이어티’를 거치면서 영화 전문기자이자 평론가로 활동했다. 2009년 한국영화에 대한 연구를 정리해『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를 저술했으며,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 미국인 사업가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달 말 개봉 예정인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도 출연했다. 현재 경희대·고려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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