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성이여 날을 세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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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엔 두 가지 짚어볼 사항이 있다. 우선 '독립된 지성' 이란 말은 '세모난 삼각형' 이란 말처럼 동어반복이다. 무엇무엇에 예속돼 있다면 이미 지성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지성은 존재하는가' 란 식의 제목도 부적절하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35면 '책이 있는 토크쇼' 참조) 식으로 말하면 지성은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돼 가는 과정에 있고, 끊임없이 탈주를 꿈꾸는 유목의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물론 주목받는 소장 사회학자인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신간 제목은 '방편' 이었을 것이다. 철학자 하버마스가 '도구적 이성' 이란 용어를 구사해 이성의 역기능을 지적하려 했듯이, 저자는 '독립된 지성' 이란 말로 지성의 오랜 역기능을 지적하고 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기도 한 저자가 1997년 이래 발표한 20편의 에세이를 모은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지식인 혹은 지성인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는 것이다.

해묵은 주제를 다시 꺼낸 의도는 자명하다. 어수선해진 이 시대 고전적 지식인상을 새롭게 음미해보자는 젊은 학자의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먼저 일제 강점기 이래 급격한 이념의 대립 속에 살아남기에 급급해 '튀지 않고 오른쪽에 서기' 라는 한국 특유의 보신주의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상을 비판한다. 그러나 저자의 화살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적어도 비판적 지성의 싹을 보였던 운동권 학생들에게도 날카롭게 가서 꽂힌다.

저자가 운동권 학생들과 정치에 입문한 386세대에 던지는 애정어린 비판은 현대사 속의 굴절된 지식인상을 대변하고 있다. 한쪽 눈을 감고 국가나 제도권과 의식을 공유하며 사상적 영양실조에 걸렸던 앞세대의 지식인상과 마찬가지로, 운동권 학생들도 주입된 지식을 받아만 먹다 소화불량에 걸려 지식의 황폐화란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때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화 과정조차 선배들에 의한 사상의 주입이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배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왜 정부에 반대해야 하는지, 자본주의는 왜 나쁜 것인지를 치열한 탐구.토론과 논쟁을 통해 깨닫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만 독백처럼 반복하는 훈련을 받고 데모하러 나갔다. " 그래서 투쟁은 용감했을지 모르나 사고는 단순했다. 권력을 비판했으면서도 권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비판은 지난주 기획리뷰에 선보인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의 『이념의 속살』(삼인) 처럼 '긴장감을 유지하는 내부 고발자의 시선' 으로 읽힌다. 반성적 성찰을 요청하는 저자에게 보수는 아직 직무유기이자 사치에 속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유의 개념, 민주주의의 개념, 계급의 개념은 우리 사회의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된 적이 없다. "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근대적 개념들은 파괴와 비판의 이념으로는 작용했으나 건설과 교육의 이념으로는 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지식인을 찾기 어려웠는데 시대는 오히려 지식인 시대 대신 전문가의 시대를 요구한다. 저자가 다시 지성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다. 저자는 어느 세대보다 자유로운 신세대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그 자유의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길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지난 세기 근대화는 바로 자유화였다. 그런데 서양의 자유주의가 절대주의의 억압과 봉건적 미망에 대한 해방 이념이었음에 반해 한국의 '이식된 자유' 란 "살아남은 자들의 수치심과 공포가 뒤섞인 신음소리" 였다.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지성은 지난 20세기 저항운동사에서 보이는 투사적 이미지는 아니다.

오히려 근대성의 명암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하는 교양인이다. 저자도 말했듯이 철학이 없는 사회, 생각이 없는 사회, 비판과 토론이 없는 사회는 그 사회를 이끄는 독립적 지성의 부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한국사회의 노동자 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은 진보적 성향의 저자가 제기한 지식인론의 바탕엔 지난 시절 변혁운동의 한계에 대한 자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저자에게 묻고 싶다.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보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개념 자체에도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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