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NLL과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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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다시 말꼬리 잡기 싸움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두고서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8일 “2007년 10월 3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주장한 이후다.

 여야 간 공방 속에 진실은 흐릿해졌다. 그래도 정상 간 대화를 짐작할 ‘우회로’가 있긴 하다. 정상회담 직후 열린 국방장관 회담(11월)과 장성급 군사회담(12월)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 후속 논의를 위해 열렸다. 핵심 쟁점인 NLL 문제에선 결국 결렬됐다. 국방부는 NLL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같은 면적의 바다를 양보하자고 한 반면 북한은 NLL 이남의 바다만 두자고 맞섰기 때문이다. 당시 회담을 수행한 이상철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에 따르면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갔다(『NLL 북방한계선-기원·위기·사수』).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남측이 불법적인 NLL을 유지하려는 건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다.

 ▶김장수 국방장관=NLL은 한국전이 끝난 당시부터 지금까지 남북 간 해상경계선으로 공고화되어 실효적으로 유지되어 온 만큼 이를 인정하고 토론해야 한다.

 ▶김영철 북측 수석대표=김정일 위원장은 ‘북측은 (북한이 NLL 이남에 정한) 해상경비계선에서 물러나고 남측은 NLL에서 물러나 그 사이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말했고, 노 대통령은 ‘NLL이 남북 간 약속한 계선이 아니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서해 해상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다. 지금은 해상분계선을 덮어놓고 거기서 교류협력을 하면 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무렵, 정확하겐 정상회담과 국방장관 회담 사이에 이런 공개 발언을 했다. “NLL은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다. 영토선이라고 하는 건 국민을 오도하는 거다.”(10월 정당대표), “(남북 회담에서) 설사 NLL에 관해 어떤 변경 합의를 할지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북한 땅도 다 우리 영토로 돼 있으니까 NLL이 위로 올라가든 아래도 내려오든 우리 영토하곤 관계없다. 하지만 어떻든 NLL을 안 건드리고 왔다.”(11월 민주평통)

 이쯤에서 종합해 보자. 노 전 대통령은 ‘NLL은 문제 있다’고 인식한 게 분명하다. 이재정·정세현·김만복·이종석·서주석 등 외교안보 참모들도 같은 주장을 폈다. 북한이 생판 거짓말한 게 아니라면 정상회담에서 NLL이 거론됐을 가능성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결과적으론 NLL을 지킨 셈이다. “장관직을 걸고 NLL을 수호하겠다”던 김장수 장관에게 협상 전권을 일임했으니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이 NLL 위의, 즉 남북에 걸친 평화수역을 생각했는데 북한이 우리 바다만 탐낸 탓도 클 거다.

 노 전 대통령이 옳든 그르든 선택했듯, 차기 대통령도 NLL을 두고 깊게 고심해야 할는지 모른다. 70년대 이후 서해는 충돌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북한이 NLL을 존중한다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NLL을 존중할 리 없다. 그렇다면 고려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NLL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장수 장관이 너무 경직된 자세를 보였다”고 했다. 김 장관이 우리 바다만 내주는 합의를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노 전 대통령이 10·4 선언 1주년에 한 말처럼 그 역시 “통합을 위해 주권의 일부는 양도할 수 있다”고 여기나.

 안철수 무소속 후보도 NLL에선 확고하다고 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브레인인 김연철 전 통일장관 정책보좌관이 “우리의 어로한계선과 NLL선 사이의 수역이 공동어로구역이 된다면 우리 배도 더 북쪽으로 가서 조업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영해가 넓어지는 것이지 어째서 축소되는가”(『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라고 말한 일이 있다. 안 후보의 생각은 어떤가. 후보들의 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