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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사 시대 저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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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재형(左), 박건영(右)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7공주’(LG화학·하이닉스·제일모직·삼성SDI·삼성전기·삼성테크윈·기아차)…. 불과 1년 전 자문형 랩 열풍을 이끌던 자문사가 이들 종목을 주로 사들이면서 생긴 신조어다. 국내 상장사는 자문사의 매수 여부에 따라 주가 등락이 갈리기도 했다. 이렇게 증시를 쥐락펴락했던 자문사가 기존 자산운용사에 인수되거나 자산운용사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사실상 자문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15일 대신자산운용은 한국창의투자자문 지분을 인수했다. 한국창의는 미래에셋 출신의 스타 펀드매니저 서재형(47) 대표가 설립한 자문사다. 서 대표는 대신자산운용의 대표를 맡게 되지만 한국창의는 사라진다. 이 회사는 2010년 설립 직후 1조5000억원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디스커버리 펀드로 유명했던 서 대표와 ‘족집게’ 투자전략가 김영익 부사장의 명성 덕이었다. 하지만 자문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이미 자문형 랩의 열기는 ‘꼭지’였다. 운용을 시작한 뒤 오래지 않아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증시가 급락하는 등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국창의가 운용사에 인수된 것을 자문사 구조조정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대부분의 자문사는 형편이 좋지 않다. 주가가 하락해 수익률이 떨어지자 성과보수 등 수수료가 줄었고, 자문형랩의 잔고도 감소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4~6월에 152개 자문사 중 125개가 적자를 냈다. 2011년 5월 말 9조원을 넘었던 자문형 랩 잔액은 올 8월 말 4조3000억원으로 한창 때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최근 몇 년간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자문사 시대는 이미 끝났고 다시 오기도 어렵다”며 “상황이 좋지 않은 자문사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확실한 자기 색깔이 있는 몇 곳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우는 다르지만 지난달 브레인도 자문사에서 운용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헤지펀드 운용을 위해서다. 미래에셋이 낳은 또 하나의 스타 박건영(45) 대표가 만든 브레인은 자문사 돌풍의 원조이자 업계 1위다. 이제 자문사 ‘빅3’ 중 원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곳은 ‘은둔의 고수’라는 한국투신 출신 권남학 대표가 이끄는 케이원 하나만 남았다.

 박건영 브레인운용 대표는 운용사 전환에 대해 “ 헤지펀드라는 사업을 추가했을 뿐 당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자문형 랩을 통한)일임자산은 여전히 회사의 중심이고 자산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성장주식에 집중투자하는 ‘자문사 스타일’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한 대형 운용사 CIO(최고운용책임자)는 “압축투자는 원칙과 철학이 없어 운용이라 보기 어렵다”며 낮게 평가했다. 증시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는 “특정 종목만 정부정책 수혜를 입는 중국 본토 증시 같은 곳에선 시총대로 주식을 편입한 공모펀드보다 한국 자문사식 투자의 성과가 훨씬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판매 창구에서는 새로 자문형 랩 가입 권유는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종석 우리투자증권 압구정 PB는 “2년 전 가입한 자문형 랩의 대부분이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을 내고 있다”며 “원금 근처에 올 때마다 조금씩 환매해 상장지수 펀드 등 다른 상품에 투자하도록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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