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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외국자본 '미완성 건물' 입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부동산투자회사인 TCI는 지난달 대우건설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서 분양한 '트럼프월드Ⅲ' 오피스텔 2백90여실을 일괄 매입해 외국인 전용 임대사업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착공 전이지만 주변 여건과 사업성만 믿고 투자의향서를 보내온 것. TCI측이 제시한 투자금액은 3천만달러다. 정식계약이 이뤄지면 TCI측은 10월부터 공사기간에 따라 자금을 투입하게 된다.

외국자본이 공사 중인 건물은 물론 착공도 안된 물건까지 입질하고 있다. 환란(換亂) 이후 금융기관 부실채권이나 수익이 예상되는 기존 빌딩 매입에 주력하더니 이제는 '미완성 부동산'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쓸 만한 오피스빌딩이 거의 없는 데다, 그나마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시행을 앞두고 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이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리츠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매입한 부동산을 출자하거나 비싼 값을 받고 리츠사에 팔 수도 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 부동산 재벌인 홍릉(興隆)그룹은 유화개발이 서울역 앞에 짓고 있던 유화빌딩(현 서울시티타워)을 지난해 말 골조만 올라간 상태에서 4백50억여원에 사들였다.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임대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이 건물은 지하 8층.지상 23층, 연면적 1만9천여평 규모로 내년 2월 말 완공예정이다.

홍릉그룹은 지난해 말 미국계 부동산펀드인 웨스트브룩아시아와 함께 50% 정도 공사가 진행 중이던 새한빌딩(현 서울 명동 센트럴빌딩)을 2백80억여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내년 2월 말 완공되면 임대사업에 들어간다.

빌딩 일변도에서 벗어나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아직 짓지도 않은 주거용 건물에까지 이들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흐름이다.

계약이 성사되진 않았지만 올 초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서울 중구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설계도만 보고 오피스텔 한 개 동을 팔 것을 쌍용건설측에 제의했다.

서울 도심에 있어 임대수익이 높을 것으로 판단해 매입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한 개 동만 따로 팔 수 없어서 거절했지만 솔깃한 조건이었다" 고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건설업계는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사업성을 보고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제도가 취약한 상태에서 외국자본이나마 돈을 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몇몇 건설업체는 자사의 프로젝트에 투자할 외국자본을 유치하려 뛰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외국회사들이 분양시점에서 물건을 사면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공사 기성금이 제때 들어오고, 분양률.홍보비 걱정을 덜어도 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아서앤더슨GCF 길연진 부장은 "외국계 투자회사도 마땅한 투자대상이 없는 한 개발사업으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며 "다만 철저히 (임대)수익이 생기거나 되팔아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곳만 가려서 투자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알짜 부동산이 몽땅 외국인 손에 넘어갈 경우 '국부유출' 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단순한 임대사업보다 시세차익만 남기고 되팔 경우 피해는 국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외국투자회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올 초까지 국내 부실기업이 시장에 내놓은 2조원대의 상업용 건물 중 1조8천여억원 어치를 사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서미숙 조인스랜드 기자 seom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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