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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배운 새마을운동 접목 ‘콩고도 잘 살아보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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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국경을 뛰어 넘은 아름다운 우정이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촉촉한 단비를 내리고 있다.

박상준 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 학장과 은 꾸무 프레이 룽굴라(Frey Lungula N’Kumu PhD) 콩고민주공화국 국회의원의 우정이 ‘콩고식 새마을운동’을 빚어냈고 마침내 굶주린 아프리카 땅에 희망의 열매가 싹트고 있다.

1 새마을운동으로 재건된 주택에서 꾸무의원과 입주민이 함께 찍은 사진. 2 주택을 재건축하고 있는 모습. 3 박상준 공주대 학장과 꾸무의원의 모습. [사진 공주대]

17년 동안 천안에 살면서 선문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꾸무 의원이 박 학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대학 시절 꾸무 의원의 외국어를 담당했던 영국인 교수가 박 학장의 지인이었고 그 영국인 교수가 제자였던 꾸무 의원을 소개하면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뤄졌다. 피부색도,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박 학장과 꾸무 의원의 우정은 그 깊이가 남달랐다. 박 학장은 꾸무 의원의 애국심에 감동을 받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0대 중반의 꾸무는 이억만리 타국에 유학을 와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청년이었어요. 그리고 그 내면에는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어요. 그래서 때로는 슬픔에 못 이겨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남다른 애국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언제나 꾸무를 만날 때면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꾸무 의원 역시 박 학장을 평생의 은인이자 콩고에 희망을 안겨준 최고의 멘토로 인정하고 있다.

 “남들은 교수나 학장으로 부르지만 저는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그저 부르기 편해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저의 가족이자 친형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형님께서는 뜨거운 가족애로 저를 보살펴 주셨지요. 지금도 그 은혜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박 학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에게 선뜻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틈나는 대로 만나 그가 이루고자 하는 국가 발전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특히 박 학장은 19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새마을 운동을 소개하며 ‘콩고를 반드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그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다.

 박 학장에게 새마을운동에 대해 상세하게 듣게 된 꾸무 의원은 무릎을 치며 ‘유레카’(바로 이것이다)를 외쳤다. 콩고에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때부터 그는 학업과 새마을운동 연수를 병행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2003년 새마을교육 관리자 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부터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향에 돌아가 새마을 운동 시범마을을 지정하는 등 새마을운동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이때도 박 학장의 진심 어린 충고는 그가 ‘콩고식 새마을운동’을 정착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어요. 반드시 내 고향에 새마을운동을 정착시키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 고향에 돌아가자마자 새마을 운동 단체를 설립하고 한국 새마을 운동 중앙회와 함께 협력 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 형님은 한국과 똑같은 새마을운동을 전개해서는 승산이 없다며 콩고의 현지 사정에 맞는 콩고식 새마을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충고하셨어요. 형님의 예상이 적중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한국과 콩고를 오가며 지속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전개했고 현재는 더 많은 새마을 지도자를 양성해 더 넓은 지역으로 새마을운동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은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모두 형님 덕분이지요.”

 특히 한국을 모델로 삼아 콩고를 발전시키겠다는 꾸무 의원은 고향으로 돌아간 뒤 새마을운동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9개 학교를 설립하며 한국에서 배워간 많은 것들을 자신의 조국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꾸무 의원은 “콩고와 한국의 역사는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을 배우고 싶었다. 지금도 머릿속에는 ‘국민들의 배고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줄 수 있을까,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한국, 그 중에서도 삶의 터전이었던 천안은 나에게 은혜의 땅이다. 특히 박상준 형님은 아프리카 콩고의 미래를 열어준 최고의 은인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청년의 꿈을 이루게 해준 박 학장은 “꾸무가 큰 산을 넘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콩고의 방식으로 새마을운동을 잘 실천한 꾸무가 있기에 앞으로도 콩고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학장은 이어 “국내 기업들이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상당 부분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꾸무처럼 실질적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나 단체, 기관에 직접적인 도움의 손길이 전달돼야 한다. 아프리카는 미래의 보고다. 단순히 지원했다는 표시만 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한다는 의미에서도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도움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꾸무 의원은 콩고 새마을회 회장, 새마을운동 국제 컨설던트,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 강사, 대한민국 국가브랜드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콩고 민주공화국 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2일 추석 연휴 기간 중 한국을 방문했다가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됐다.

최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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