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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헤지펀드, 통 큰 규제 완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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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송진호
KB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장

세계무역기구(WTO)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수출 규모가 5552억 달러로 수출 금액 기준 세계 7위 국가다.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50년 만에 무역 규모가 2000배 이상 성장했다. 반도체와 선박 등 70여 제품이 세계수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기업의 부단한 노력과 무엇보다 국민의 희생과 땀의 결실이다. 한국은 수출대국인 동시에 무역강국이 됐다.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고, 56년에 증권거래소가 개장했다. 72년 ‘8·3 긴급조치’로 사채 동결 및 사금융의 양성화가 이뤄졌고, 그해에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돼 발행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촉진했다. 이러한 효과로 78년 주식거래대금 1조원 돌파, 89년 코스피 지수는 최초로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금융 개방화 시대인 90년대는 외국인에게 주식시장이 개방됐고, 금융 선진화 시대인 2000년대에 들어 2007년 코스피 지수는 2000포인트를 돌파했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G20 서울 정상회의’를 이끈 한국의 금융은 많이 성장했다.

 경쟁력 있는 제조업 기반을 만들기 위해 성장지향형 정책에 맞췄던 금융 정책이 분배와 성장의 균형을 맞춰가는 금융 정책으로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리고, 2000년 이후 세계경제의 동조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국내 금융자본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함이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최근 발생한 유럽발 경제위기는 개별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채무와 금융시스템의 복합적인 문제여서 이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정부의 현명한 금융 정책과 튼튼한 금융회사 모두의 강한 시스템과 체력을 요구하고 있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형 헤지펀드’를 시작했다. 아직 시장의 초기이고 더구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은 현재 6000억원 규모로 기대보다 활발하게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다. 헤지펀드 운용사의 자격이 까다롭고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최소 투자자금도 5억원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높다. 물론 초기시장 보호 때문에 엄격했던 규정이 하반기에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는 금융업계에서는 벤처기업이다. 벤처기업이 초기의 기술력으로 자금을 받아 큰 성공을 꿈꾸듯이, 금융 벤처인 헤지펀드도 운용 능력으로 작게 시작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금융투자 기구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금융 수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능력과 꿈이 있는 많은 젊은 금융인이 시장에서 성공하고 세계 금융시장의 자금이 한국형 헤지펀드로 몰려올 수 있도록 세세한 규제가 아니라 큰 틀에서 활발하게 커갈 수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 기관투자가도 금융 벤처에 일정 규모를 초기 투자해 우수 펀드를 빨리 찾아내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진정한 금융 벤처와 수출형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한국형 헤지펀드에 대한 금융당국의 통 큰 규제 완화와 금융회사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한다.

송진호 KB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