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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경제·음식·인성에 미치는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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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

영국 국적인 필자는 멕시코에서 18년을 살았다. 멕시코에 살면서 영국과 멕시코 두 나라의 차이점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 여러 가지 차이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바로 두 나라 국민의 ‘기질’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인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엄격한 반면 멕시코인은 열정적이며 삶을 즐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점이 생겼을까.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기후’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날씨는 나쁘기로 유명한데 특히 영국의 겨울은 북유럽 국가처럼 춥고 습하며 음산하다. 반면에 멕시코는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를 자랑한다.

 비록 과학자는 아니지만 수년 동안 문화와 날씨를 함께 관찰해 본 결과, 기후가 사람의 성향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상대적으로 햇빛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외향적인 경향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내성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햇빛을 이용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 발전 역시 기후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냉혹한 겨울을 지내야 하는 사람은 포근한 겨울을 보내는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기규율이 더욱 엄격하고 부지런한 경향이 있다. 반면에 겨울철 기후가 그리 냉혹하지 않은 지역의 사람은 겨울에도 과일이나 생선 등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은 해당 지역 사람의 비즈니스 방식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독일, 네덜란드, 영국,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국가는 추운 겨울과 경제관념이 철저한 국민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스페인이나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경향이 덜하다. 실제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가진 북유럽 국가는 남유럽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편이다.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는 매년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했고, 그럴 필요가 없었던 동남아시아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다. 이는 남미와 칠레를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를 자랑하고, 겨울이 춥다. 캐나다와 멕시코도 모두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국토의 면적도 넓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멕시코보다 캐나다가 훨씬 부유하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11년 멕시코의 1인당 GDP는 9489달러인 데 반해 캐나다는 4만7340달러다. 아한대에 속하는 북캐나다의 겨울은 매섭게 춥지만 멕시코의 겨울은 따뜻한 편이다.(물론 캐나다인의 조상은 추운 북유럽 출신이며, 멕시코인의 조상은 따뜻한 남유럽 출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음식 역시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 것 중 하나다. 따뜻한 날씨 속에서는 다양한 향료를 재배할 수 있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즐기는 문화 역시 온화한 기후의 국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필자 또한 영국 음식보다는 인도, 태국, 이탈리아 그리고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음식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의 의견이 너무 단순하다고 여길 수 있고, 당연히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마야, 그리스, 로마, 아라비아, 페르시아, 무굴 등 수많은 위대한 문명은 더운 기후 속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산업화 이전까지는 남유럽 지역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북유럽보다 더욱 발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의 이 같은 관찰 결과는 사람, 음식, 경제 발전과 기후의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북부지방의 사람은 따뜻한 기후를 가진 국가를 부러워한다. 휴가철이 되면 기후가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자신들 고유의 음식보다 그 지역 음식을 더 자주 먹곤 한다. 그러나 경험에 비춰보면 추운 겨울 속에서 절제력을 갖춘 국민성이 형성되고, 일반적으로 이는 보다 견실한 경제로 이어진다. 한국은 국민의 강한 정신력과 탄탄한 경제를 가능하게 한 ‘추운 겨울’과, 양념 재배가 가능한 따뜻한 기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의 기후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