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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재를 키우자] ① 미국 G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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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983년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당시 회장은 낡고 유명무실해진 크로톤빌 연수원 재건 공사에 드는 4천6백만달러짜리 지출안에 서명하면서 투자 회수기간 항목에 무한'(Infinite)이라고 써넣었다.

인재 확보에 드는 투자는 '비용과 효과' 차원을 넘어선 기업 생존의 기본이라는 신념의 표출이었다. 당시 GE는 한창 조직 축소에 몰두할 때였다.

웰치의 서명 이후 뉴욕주 오시닝에 있는 52에이커(약 6만3천여평) 부지의 크로톤빌 연수원은 '최고 인재 확보'라는 GE 인사 정책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다.

웰치는 재임 시절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달에 한두번은 GE 본사가 있는 코네티컷주 페어필드에서 헬기를 타고 크로톤빌로 날아와 강의와 토론을 했다. 그러느라 1년에 30일은 여기서 지냈다. 이렇게 교육받은 2만여명의 임직원들은 GE 성장의 견인차가 됐다.

이같은 관심은 2001년 9월 웰치의 뒤를 이어 GE의 지휘봉을 잡은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이멜트 회장도 한달에 두 번은 반드시 크로톤빌을 방문해 이 곳에서 교육받고 있는 GE의 '차세대 리더'들과 토론을 벌인다. 그의 크로톤빌 챙기기는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삼성의 이재용 상무보가 참가해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크로톤빌의 최고위 교육과정인 임원개발 과정(Executive Development Course)에 참가하는 매년 30명의 명단도 회장이 직접 챙긴다.

◇CEO의 끝없는 인재 관심=재직 당시 잭 웰치의 사무실에는 '전략보다 사람이 우선한다'(People First, Strategy Second)는 격언이 붙어 있고 "내 업무의 70%는 인재에 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내 업무의 절반 이상을 인재에 쏟겠다"고 강조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연상케 한다. 웰치 전 회장의 인재 최우선 기조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뉴욕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페어필드의 GE 본사에서 만난 윌리엄 코너티 인사담당 수석 부사장은 "이멜트 회장이 가장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는 임원이 바로 나"라며 CEO의 인재에 대한 유별난 관심을 소개했다.

GE 인사관리의 핵심은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세션 C(Session C)'라는 제도를 통해 이뤄진다. 세션 C는 임직원의 능력 및 업적을 통해 이들의 급여 인상, 승진, 교육파견 여부, 주요 직책 승계 가능성 등을 따지는 과정이다.

사업부.직급별로 모든 임직원들이 A, B, C 세 등급으로 나뉘는 것도 이 과정을 통해서다. A등급은 B등급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급료와 스톡옵션, 승진 기회를 제공받는다.

반면 하위 10%의 C등급을 받은 사람은 재교육을 통한 구제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회사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회장은 매년 4, 7, 11월 세차례에 걸쳐 열리는 세션 C 회의에 하루종일 참여해 사업부별 현안과 실천계획을 직접 점검한다.

세션 C는 GE의 차세대 리더를 골라내 기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위 5백개 관리직은 이른바 '체스판' 방법을 통해 배치한다. 체스판에 놓을 말들을 고르듯 각각의 자리에 후보자 명부를 미리 만든 뒤, 자리가 비면 고용 담당자가 명단에서 최종 선발한다.

회장은 세션 C를 통해 얻어진 인사 정보를 활용해 후보자 명부 작성에 직접 관여한다.

세션 C라는 명확한 절차가 있긴 하지만 GE의 인재 선발은 제도와 형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원개발팀의 매니저 그레그 캐피토는 "모든 사업 회의, 비공식적인 회합, 심지어 회장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도 인사평가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환경에서 사람을 평가해야 제대로 된 인재 선발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임원들이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잭 웰치는 GE 내 4백명에 이르는 상급 임원들의 이름과 얼굴은 물론 이들의 별명. 습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같은 개인적 관심은 이멜트 회장도 못지 않다. 이멜트는 해외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각 사업장에서 선발된 A급 인재들을 만나는 시간을 반드시 갖는다.

◇핵심 인재가 기업 운명을 좌우=웰치는 "내가 인재를 강조하는 것은 능력있는 사람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핵심 인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웰치 자신이다.

웰치는 81년 45세의 젊은 나이로 GE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극적인 경영 재편을 통해 시가총액 1백30억달러에 머무르던 기업을 시가총액 4천7백억달러의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시장에서 1, 2위가 아닌 사업부는 폐쇄하거나 매각한다는 방침으로 취임 초기 1백70여개나 됐던 사업 중 1백10개 사업을 정리하는 결단력을 보여줬다. 또 세계화 전략.6시그마 운동.e비즈니스 전략 등 혁신적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공헌 중 으뜸은 역시 인사평가와 보상 시스템 정립, 크로톤빌 강화와 리더십 강조 등으로 요약되는 인재 정책이다. 웰치의 후임자인 이멜트도 이같은 인재 중시 전략에서 배출됐다.

82년 마케팅 부문 매니저로 시작해 GE가전의 부사장, 국제마케팅 담당 부사장, GE메디컬시스템 사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인재와 리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웰치는 차기 CEO를 잘 뽑는 것이 기업 생존과 발전의 최우선임을 실감하고 무려 7년간에 걸친 후계자 선발 작업을 펼쳤다.

임기를 7년이나 남겨놓은 94년 GE 내 모든 임원들의 파일을 뒤져 23명의 후보를 추려낸 뒤 98년 말 이중 3명을 최종 후보로 압축했다. 그리고 거의 2년에 걸친 경쟁 끝에 가장 적임인 이멜트를 선정했다.

GE 내 각 사업부문 사장들의 가장 중요한 일도 인재 관리다. 세션 C에서 A를 받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면 사장은 곧바로 회장의 질책을 받는다. 이런 인재 관리 때문에 A 고과를 받은 인재가 GE를 떠나는 비율은 1%가 채 안된다고 GE 측은 설명한다.

페어필드(미국 코네티컷주)=이현상 기자

<기획취재팀>
김영욱(팀장).이영렬.류권하.이현상.염태정 기자(이상 산업부).주정완 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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