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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제로 시대, 리더 없어 경제위기” “그건 과장, G20 덕에 위기 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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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3일 일본 도쿄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미쓰시비 UFJ 파이낸셜그룹 주최 심포지엄에서 세계경제전문가 4인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언 브레머 유라시안그룹 대표,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경제논설주간,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 히라노 노부유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장. [도쿄=김현기 특파원]

글로벌 경제가 ‘시계 제로’의 혼미에 빠져 있다. 유럽은 어디로 가고, 미국이 다시 세계경제의 회복을 이끌지, 그리고 동북아의 정치적 갈등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의문이 증폭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쿄 연차총회를 계기로 세계적 경제전문가들이 만나 ‘G제로 시대의 성장과 회복의 원동력’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13일 도쿄 팔래스호텔에서 미쓰비시UFJ 파이낸셜그룹이 주최한 심포지엄에는 미국과 유럽, 한국·일본 등의 최고 전문가 토론을 듣기 위해 700여 명의 청중이 몰렸다. 이번 심포지엄에선 특히 ‘G20(주요 20개국) 무용론’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G20도 G2(미국과 중국)도 아닌 ‘리더 없는 시대(G제로)’를 주장하는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에 대해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경제논설주간과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이 “집단적 해결 노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맞섰다. 일본 측에선 히라노 노부유키(平野信行) 미쓰비시UFJ은행장과 사회자로 교텐 도요오(行天豊雄)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전 대장성 재무관)이 참가했다. 다음은 토론 주요 내용.

▶이언 브레머=21세기도 벌써 8분의 1이 지났다. 다들 아시아의 시대를 얘기했지만 난 실감을 못하겠다. 아직도 ‘G제로’의 시대다. 유로존은 무너졌고, 일본도 그렇다. 미국은 예전처럼 ‘최후의 금고지기’ 역할을 할 열의가 없어 보인다. 지구촌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

 ▶마틴 울프=누구나 ‘유럽 경제가 정말 걱정이냐’고 묻는데 내 대답은 ‘예스’다. 앞으로 유로존의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첫째는 ‘행복한 결혼’. 유로존 전체가 혜택을 얻는 것이다. 둘째는 ‘불행한 결혼’. 억지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이혼보다는 낫다고 자위한다. 셋째는 이혼. 내 생각에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불행한 결혼’이다. 하지만 상당한 희생이 요구된다. 현 위기의 극복 여부를 떠나 유럽연합(EU)은 계속 변할 것이고, 향후 유럽은 5년 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띨 것이다.

 ▶사공일=동북아시아 한·중·일의 정치적 갈등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중·일 3국이 경제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을 위해선 상호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아직도 이 지역은 과거사에 얽매여 다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3국이 모두 노력해야겠지만 일본이 앞장서야 한다. 불신을 줄이기 위해 한·중·일에 공히 도움이 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환경·기후변화, 자원에너지 개발 등의 분야가 가능하다. 금융 및 통화 분야에서도 ‘윈-윈’할 여지가 많다. 3국 간 통화스와프 상설화, 무역에 3국 통화결제 추진, 금융 관련 연구훈련센터 설립 등이 요구된다. 상호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도 재개되길 희망한다.

 ▶히라노 노부유키=금융의 역사는 위기의 역사와 다름없다. 거의 10년 간격으로 위기가 터졌다. 그런 점에서 금융이 과연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일본에 대해 ‘잃어버린 10년, 20년’이라고 하는데, 금융업에 플러스가 된 점도 있다. 일본은 금융이 기본 역할 중심으로 재편된 결과 2007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를 별 충격 없이 이겨내고 있다.

 ▶사회자(교텐)=‘G제로’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가 다시 미국만 보고 있지 않나.

 ▶브레머=내가 말하는 ‘G제로’는 현 상황에선 해결책이 없다는 걸 깨닫고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난 유엔 안보리도, G20도 잘못이라고 본다. (IMF 등) 글로벌 총회 같은 것도 필요 없다. 중요한 건 똑같은 생각,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그룹이 뭉치는 것이다. 예컨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미국·호주·싱가포르 등이 참여했고 일본·캐나다 등은 검토 중) 같은 걸 해야 한다. 가치관이 공유돼야 오래갈 수 있다.

 ▶사공=과장된 얘기다. 그나마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이 완화된 것은 G20 국가 간의 정책공조 덕분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유엔 가입 193개국이 전부 참여하는) ‘G193’이겠지만 그렇게는 기능이 안 되니 안보리가 있는 것이다. G20도 G7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집단적 논의와 해결의 장을 마련한 것이고, 성과 또한 내고 있다.

 ▶마틴=동맹끼리만 뭉치고 다른 대국들을 배척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G20을 만들 때 중국·인도를 포함시켜 세계경제 시스템을 논의하게 된 것이다.

 ▶사회자=유럽발 경제위기 와중에 EU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럽의 힘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는 것인가.

 ▶마틴=EU에 가입하길 거부한 노르웨이가 EU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웃음) 이번 선정은 적절했다. 하지만 유럽은 혼돈적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대부분이 ‘내가 번 돈을 (위기에 처한) 다른 국가에 도둑맞는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결혼’이 ‘타당한 결혼’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 같다. 그 기간 동안 이혼을 피하도록 카운슬링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공=아시아는 아직 결혼은커녕 약혼도 못하고 있다(웃음). 그래서 신뢰 구축을 위한 ‘과거사 극복’이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번영과 안정에 필수적이다. 남북통일에는 큰 비용이 들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재정 건전성과 금융안정, 외환관리 등에 보다 철저해야 한다. 또 미·일·중·러 등 주변국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참석자

◆이언 브레머=유라시안그룹 대표. 국제정치학자로서 학계, 금융계, 정·관계 등에서 광범하게 활동한다. 1994년 미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취득. 98년 지적학 리스크를 전문 컨설팅하는 유라시안을 설립했다.

◆마틴 울프=파이낸셜타임스(FT) 경제논설주간.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 취득. 세계은행을 거쳐 87년 FT에 합류했다. 경제 논설·분석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사공일=중앙일보 고문 겸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경제수석과 재무장관, G20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서울대를 거쳐 UCLA에서 박사를 받았다. 93년 세계경제연구원을 설립했다.

◆히라노 노부유키=미쓰비시도쿄UFJ은행장. 교토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74년 미쓰비시은행에 입사. 브뤼셀·뉴욕 등에서 국제금융 업무를 총괄했다. 2001년 귀국 후 UFJ은행과의 합병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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