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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에게 주식 공짜로 줬더니 퇴근시간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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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구시 월암동 쌍용머티리얼 본사 로비에서 김진영 대구공장장(앞줄 가운데)과 생산·관리·연구직 직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회사 측은 “전업투자자 한세희씨가 직원에게 주식 20만 주를 무상으로 기부한 이후 생산성이 뚜렷이 올라갔다”고 말한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11일 대구시 월암동 소재 자동차 부품 제조사 쌍용머티리얼. 정례 노사회의가 열렸다. 박장희 노조위원장은 “직원 안전교육을 위한 예산을 늘려 달라”며 “안전사고가 줄면 직원도 좋지만 회사도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회사 측 대표 이재성 상무에게 건의했다. 매년 단골 메뉴였던 임금 인상이나 복지기금 관련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중앙일보 4월 14일자 22, 23면.

 변화는 이뿐이 아니다. 이 회사는 올해 들어 생산성이 눈에 띄게 올랐다. 광물을 잘게 부수는 조분쇄 공정의 시간당 생산량은 지난해 1.45㎏에서 올해 1.69㎏으로 18.2%, 성형 공정의 시간당 생산량은 66㎏에서 68㎏으로 5.4% 늘었다. “다 주식 기부 이후 일어난 변화”라는 게 이 회사 이영조(62) 사장의 주장이다.

 주주가 직원에게 주식을 공짜로 나눠주니 회사가 바뀌었다. 전업 투자자 한세희(36)씨가 쌍용머티리얼 직원들에게 주식 20만 주를 기부한 뒤 생긴 변화다. 한씨는 올 3월 보유했던 이 회사 주식 225만 주 중 90만 주를 처분하며 두 차례에 걸쳐 각 10만 주를 회사에 전달했다. 10만 주는 사내 복지기금에 쓰고 10만 주는 직원들에게 나눠 달라고 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덕에 주가가 올라 이득을 봤다. 이익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 4월 14일 22, 23면)

 초유의 주식 기부 프로젝트엔 한씨의 아버지인 한상진(67· 사회학) 서울대 명예교수가 가세했다. 어떻게 주식을 나눠줄 것인지, 주식 기부가 회사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기로 한 것이다. 4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전 직원 설문조사를 했다. 직원 대부분(83.6%)의 뜻에 따라 주식은 모든 직원에게 똑같이 나눠줬다. 한 교수는 “근무 연수나 직책에 따라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꽤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의 결과였다”며 “생각지 않게 생긴 선물인 만큼 직원 간 갈등 없이 나누자는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파견 직원 3명을 포함한 직원 283명은 똑같이 353주의 회사 주식을 받았다. 현 시세로 1명에게 83만여원어치다. 사내 복지기금으로 적립된 10만 주의 주식은 직원 명절 선물 등에 쓰기로 했다.

 주식 기부 이후 직원들의 사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갔다고 이영조 사장은 말한다. 시간당 생산량이 주식 기부 소식이 전해진 4월부터 뚜렷하게 올라갔다고 한다. 올 2월만 해도 8.42%였던 불량률은 4월 6.74%로 뚝 떨어져 지금까지 7%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장은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면 주가가 올라 고맙다고 주주가 주식을 나눠주겠나’는 생각에 직원들이 신이 났다”며 “퇴근 시간이 돼도 ‘하던 일은 마저 하고 가겠다’는 직원들이 늘면서 생산성도 따라 올랐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주주와 직원의 공생(共生)에 대한 연구결과를 15일 서울 봉천동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에서 발표한다. ▶주주가 직원의 이익이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가지면 이는 결국 주주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회사가 사회적 책임(CSR)을 다할수록 직원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한 교수는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논의가 많은 요즘, 어떻게 하면 주주와 기업, 직원이 함께 발전할 수 있을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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