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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기자의 해외 석학 인터뷰]“종교 경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니 과학과 충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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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12면

믈로디노프 교수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출간한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부사장으로 일할 때 회사를 어린이 게임 분야 톱5로 끌어올렸다. [사진 Martin Haburaj]

과학자는 어느 정도 글도 잘 써야 한다. 과학도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로 소통된다.

레너드 믈로디노프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

레너드 믈로디노프(58) 교수는 물리학자로서도 상당한 업적이 있지만 베스트셀러 과학 작가로 더 유명하다. 그는 스티븐 호킹 교수와 함께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A Briefer History of Time)(2005), 위대한 설계(Grand Design)(2010)를 저술했다. 영성 분야의 구루인 디팩 초프라와는 세계관 전쟁(War of the Worldviews)에서 과학과 영성의 충돌을 각자의 입장에서 논했다.

단독 저서로는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The Drunkard’s Walk: How Randomness Rules Our Lives)(2008), 잠재의식(Subliminal)(2012) 등이 있다. 믈로디노프 교수는 TV 드라마 ‘맥가이버’ ‘스타트렉’의 대본을 썼으며 월스트리트저널·뉴욕타임스·포브스에 과학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박사 동문’의 수가 미국에서 가장 많은 UC버클리에서 공부(이론물리학 박사)했으며 천재들만 다닌다는 캘텍의 교수다. 그를 5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이야기』의 우리말 번역본 표지

-과학과 글쓰기는 어떤 관계인가.
“ 유사성이 많다. 과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창의성, 호기심과 끈기(persistence, perseverance)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과학을 ‘신앙’으로 삼아 사는 게 가능한가.
“과학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영성(spirituality)에서 찾아야 한다. 물질적인 세계의 본질이나, 땅·별·집·자동차·우주·전화와 같은 인간의 모든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과학으로부터 배우는 게 가장 많다. 과학은 항상 발전하며 더 좋은 설명을 내놓는다. 또한 설명이 실제와 부합하는지 검증한다.”

-과학과 종교는 어떤 경우에 충돌하는가.
“종교 경전의 내용 중에서 물질 세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글자 그대로(literally)’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서구 종교의 경우에 그렇다. 종교를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지침으로 보면 충돌이 없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공저한 위대한 설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위대한 설계는 우주가 어디로부터 와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에 대해 답한다. 오해와 달리 ‘신(神)은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책이 아니다. 호킹 교수와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과학이 우주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으며 우주가 반드시 신의 창조물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우주는 무(無)에서 나올 수 있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리학의 법칙을 바탕으로 한다. 물리학은 항상 법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법칙은 또 다른 법칙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물리학은 과학적 설명의 바탕인 법칙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법칙들이 생기기 위해서는 신(神)이 필요한 것일까.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이다. 우리가 과학자로서 내놓는 답은 ‘모른다’이다.”

-호킹 박사와 같이 작업하게 된 사연은?
“호킹 교수는 1년에 한 달쯤 캘텍에서 지낸다. 호킹 교수가 책을 같이 쓰자고 접촉해 와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가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은 호킹 교수의 1970~80년대 연구를 기초로 씌어졌기 때문에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한 책을 쓰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온 게 위대한 설계다.”

-과학은 사회적 전통의 일부로서 위치가 확고한가. 비과학적 사고나 행동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사람이 과학을 믿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특히 많은 정치인이 과학을 믿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과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유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를 부정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많은 사람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거나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최근 출간한 잠재의식(Subliminal)은 무엇에 대해 다루고 있는가.
“무의식에 대한 책이다.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의 후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편에서는 무작위성(randomness)이나 우연(chance)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오해하는지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무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감정과 믿음, 지각(perception)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감정·믿음·지각은 우리가 전혀 의식하는 못하는 우리 뇌의 활동 과정에서 생겨난다. 무의식을 모르면 내가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과거의 기억, 나 자신이나 남에 대한 판단, 신체언어(body language), 목소리나 생김새로 남을 판단하는 것도 무의식의 산물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의식은 어디에서 왔나.
“무의식이 형성된 것은 인류가 문명이 아니라 야생의 상태에서 살았을 때다. 위급한 상황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무의식이 설계됐다. 예컨대 나를 잡아먹으려는 포식동물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파악하고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3차원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망막에 맺히는 영상은 2차원이지만 뇌가 3차원으로 변환한다. 야생에서 생존하려면 2초도 너무 길었다. 신속히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뇌는 아주 제한적인 정보만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과학서도 출간했는데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과학 교육법은.
“과학에 대한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면 어린이에게 질문을 하고, 어린이 스스로 질문을 해보도록 격려하는 게 중요하다. 밤하늘의 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아주 어린 아이에게도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에 대해 질문을 해보라. 예컨대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하늘로 내뿜으면 왜 올라갈 때하고 달리 내려올 때는 물이 흩어질까. 학교가 할 일은 최소한 과학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 호기심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너무 많은 학교가 과학을 가르칠 때 팩트(fact) 중심으로 가르친다. 너무 많은 것에 대해 암기를 강요하다 보면 어린이는 진짜 과학으로부터 멀어진다. 잘못 가르치면 어린이는 과학이 암기 과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공식을 암기시키려 하기보다는 어린이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질적인 많은 현상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인데 어른도 잘 모르는 것이면 인터넷을 뒤지면 된다.”

-물리학 연구도 계속하고 있는지.
“물리학에 대해서도 아주 느린 속도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리학 논문을 발표한 것은 2005년이다. 몇 년 전부터 한 물리학 연구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집필하는 데 쓰고 있다. 시간이 남으면 물리학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마인드를 계속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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