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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수퍼 루키’ … Q스쿨 꼴찌의 화려한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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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19면

존 허가 지난 5일 저스틴 팀브레이크 아동병원 오픈 골프대회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들만이 모이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무대에서 아시아계 선수로는 최초로 PGA 투어 ‘올해의 신인왕’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 존 허(22·미국)가 주인공이다.

아시아계 최초 PGA 신인왕 유력한 존 허

존 허는 1년 만에 고국에서 열리는 한국프로골프투어(KGT)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하고자 한국에 왔다. 그는 9일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요즘 PGA 투어의 동료들에게 열심히 인사하고 다닌다”며 해맑게 웃었다. PGA 투어에서는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신인왕을 선수들의 투표로 뽑기 때문에 ‘선거(?) 운동’을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것이다.

올 시즌 PGA 투어에 데뷔한 존 허는 지난 2월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두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후 벨라로 텍사스 오픈 준우승,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 공동 5위 등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상금 랭킹 28위(269만 달러)로 올라섰다. PGA 투어 플레이오프인 페덱스 컵에서는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 유일한 신인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인 것이다. 올해 여섯 차례 톱10에 이름을 올린 버드 컬리(22·미국)가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성적만 놓고 보면 적수가 되지 않는다. 존 허는 “아직 시즌이 남아 있고 지금까지 올린 내 성적도 괜찮다”며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신인왕 타이틀을 따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욕심이 나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첫해 우승을 한 존 허가 더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 무대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맞이하기까지 존 허는 험난한 여정을 겪어야 했다. 1990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존 허는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 중계동에 있었던 한 실내 골프장에서 처음 골프공을 쳐 봤다가 골프에 재미를 느낀 그는 단번에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그러나 잠깐 기본기를 익힌 후 가족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 존 허가 살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던 막내 고모가 사업에 실패하면서다. 이후 시카고에 자리를 잡은 존 허는 한인 코치에게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전문 티칭 프로에게 레슨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허옥식씨)에게 위로를 받으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골프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누구나 처음 이민을 오면 고생을 하기 마련’이라면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PGA 투어로 진출하겠다는 다짐을 더 확고히 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멘토 역할을 해 주신 아버지에게는 평생 감사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새로운 기회가 왔다. 2009년 한국프로골프투어에 진출하면서다. 외국 선수 퀄러파잉(Q)스쿨을 통해 국내 무대에 데뷔하게 된 존 허는 지난해 말까지 KGT에 출전했다. 존 허는 “세계무대에서 성공한 최경주 선배나 양용은 선배를 보고 한국 골프도 경쟁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최종 목표는 PGA 투어였지만 한국 프로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 한국행을 택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1라운드에 죽 쑤는 사나이.” 존 허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유달리 1라운드 성적이 좋지 않았다. 1라운드에서는 국내 골프장들의 코스를 잘 몰라 실수가 잦았는데 형편이 어려워 연습라운드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에 연고가 없어 서울 미아리에 있는 어머니 친구 집에서 잠을 잤다. 분당에 있는 연습장까지 두 시간 가까이 전철로 이동해 훈련을 했다. 그는 “골프 가방을 메고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싫지 않았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직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 힘든 것은 차별이었다. 존 허는 국적이 미국이라 외국 선수 Q스쿨을 통해 한국 대회에 나와야 했다. 그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선수 참가 제한 규정 때문에 아예 대회에 못 나간 적도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엄격한 선후배 관계는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것도 익숙지 않아 고생을 했다. 몇몇 선배들이 그를 도와줬다. 박도규(42·르꼬끄골프), 황인춘(38·토마토저축은행) 같은 고참 선배들이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최경주(42·SK텔레콤)를 꺾고 우승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PGA 투어 통산 7승을 거둔 최경주는 이미 실력을 공인 받은 월드 스타였다. 대회 마지막 날 존 허는 4타를 줄였고 최경주는 2타를 잃는 바람에 존 허가 2타 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에게 이 승리는 의미가 크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존 허는 이 우승 덕분에 올해 PGA 투어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는 “지금도 생생하다. 첫 우승이었기에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PGA 투어에서 성공을 거둔 최경주 선배를 이기고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최경주 선배에게 감사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KGT에도 늘 감사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골프 팬들은 존 허를 ‘루키 Huh’라고 부른다. 그의 특이한 성(性)인 Huh(영어로 놀랄 때 내뱉는 감탄사)를 따다 붙인 ‘놀라운 수퍼 루키’란 뜻이다. 지난해 PGA 투어 Q스쿨을 꼴찌로 통과해 별로 기대를 모으지 못했던 루키가 5개 대회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팬들의 반응이다. 무엇보다 베테랑 로버트 앨런비(41·호주)와 펼친 8차 연장 혈투는 뜨거운 화제를 뿌렸다. 존 허는 “당시 신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이제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오면 전혀 떨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존 허는 내년 시즌에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 같은 대스타들과 맞붙는 당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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