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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비극적 사랑’ 레나테 홍, 4년 만에 찾은 북한 땅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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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27일 레나테 홍 할머니와 아들 페터 현철이 함흥시 흥덕구역 인근 야산에 매장된 홍옥근씨의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홍씨가 재혼해 낳은 딸 광희씨(가운데)가 자리를 함께했다. [사진 레나테 홍]

2008년 7월에 이어 4년여 만에 평양을 다시 찾은 레나테 홍 할머니가 맏아들 페터 현철(52)과 7박8일간 경험한 북한 방문기를 싣는다. 그는 갑작스레 별세한 남편 홍옥근(79)씨가 묻혀 있는 함흥시와 평양을 포함한 인근 지역을 다녀왔다.

북한 의료진이 기록한 홍옥근씨의 입원 병력서. 홍씨의 사망 당시 정황과 직접사인이 뇌출혈이라는 것을 담당의사가 진단해 기록해 놓았다. [사진 레나테 홍]

남편 홍옥근은 함흥시 흥덕구역 인근 야산에 묻혀 있었다. 그가 살던 집 근처라고 했다. 평양에서 출발한 미니버스는 4시간을 달려 오후 3시30분쯤 함흥시 흥서동 산자락에 도착했다. 지난 4년간 독일에서 남편에게 보낸 60 여 통 편지의 종착지가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버스에서 내리니 남편이 북한에서 재혼해 낳은 딸 광희(44)가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사이 맘고생이 컸던지 얼굴이 해쓱했다. 2008년 첫 상봉 때의 밝고 쾌활하던 모습은 오간 데가 없었다. 함경남도 적십자사 직원이 앞장을 섰다. 슬레이트 기와를 얼기설기 얹은 단층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잇길을 10여 분 걸어서 빠져나왔다. 뛰놀던 아이들이 신기한 듯 우리 일행을 쳐다보았다. 가옥들 옆에는 텃밭이 산기슭에 연결돼 있었다. 배추 밭을 가로질러 언덕을 올랐다. 산마루 끝에 묘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무덤은 한국에서 보았던 둥그런 모양이 아니라 길다란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지면보다 30㎝가량 흙더미를 쌓아 올린 후 떼를 입혔다. 그 앞에는 목각으로 만든 묘비를 세워 놓았다. ‘고 홍옥근 지묘. 1937.4.15일생. 2012.9.4. 사망. 묘주 아들 홍광호, 딸 홍광희’ 가슴이 떨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우리를 짓눌렀다. 나와 현철은 그저 광희의 어깨를 부여잡고 넋을 놓고 서 있을 뿐이었다.

 2008년 상봉을 마치고 헤어질 때 공항에서의 남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눈물을 감추려고 얼굴을 돌리던 그이. 그에게 나는 “우리의 만남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머릿속 깊숙한 곳에 새겨 주세요. 세상이 우리를 갈라 놓았지만 그 기억만큼은 어느 누구도 앗아갈 수 없을 거예요”라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행한 적십자사 직원이 침묵을 깨고 문서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의사가 작성한 남편의 입원병력서였다. 비교적 상세하게 사망 전후의 상황을 기록해 놓았다. 남편의 직접적인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남편은 지난 9월 3일 저녁 10시쯤 집 앞마당에서 넘어진 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도착 당시 이미 좌측반신이 완전 마비됐고 경련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입원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 윤기숙은 남편의 사인에 대해 “(쓰러지기 전) 처와 아들의 만남 소식으로 (홍씨가) 기쁨에 넘쳐 이야기하다 소변을 보려고 밖으로 나가다가 마당에서 꽝 넘어져서 의식을 잃었다”고 기록했다. 통역은 약간의 고혈압 증세를 보이던 남편이 가족 상봉 날짜가 다가오자 너무 흥분한 것이 뇌출혈의 원인이 됐을 거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듣자 다시 가슴이 미어져왔다. 상봉 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면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이 병력서에는 광희의 남동생인 광현(1972년생)이가 최근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4 년 전 남편은 군에 가 있는 큰아들이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부자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는 줄초상이 닥친 셈이다. 광희가 그토록 멍한 표정을 지은 이유를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30분간 묘소 참배를 마치고 마전관광휴양소 내 호텔로 향했다. 오후 5시쯤 광희와 나, 현철은 이른 시간이지만 저녁식탁에 둘러앉았다.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나도 광희도 짧게 안부를 물어보고는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눈에 맺히는 이슬 때문에 광희의 앞모습이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 두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느리게,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속절없이 빠르게 휙 지나갔다. “옥체 건강하십시오. 또 만나기를 바랍니다.” 안내원의 시간재촉에 쫓기면서도 광희는 여러 번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헤어지면 광희를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번의 방북 여행에서는 당초 추석을 맞아 평양에서 남편과 광희를만나기로 계획돼 있었다. 둘째 아들 우베는 직장일 때문에 함께 올 수 없었지만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차곡차곡 여행준비를 해왔다. 선물도 사고, 가지고 갈 약과 먹거리는 떠나기 전 구입하기로 했다. 그러던 차 상봉을 불과 3주 앞두고 남편이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이 왔다. 긴장이 탁 풀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두 아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당연히 가봐야지요. 동생 광희도 만나 위로하고요.” 우리는 당초 계획대로 9월 26일 평양을 향해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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