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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갈등만 증폭시킨 출구전략…당국 특단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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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은기자] "비대위가 '매몰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길래 (사업 취소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줬더니, 조합원 수로 단순히 나눠도 가구당 4600만원이라네요. 기가 막혀서…. 마른 하늘의 날 벼락이지 서민들이 하루아침에 그만한 돈을 어디서 구한답니까." (부천시 춘의1-1구역 주민 김모씨·여·50)"조합 취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주민들한테 매몰비용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부천시에 요청을 했었어요. 그런데 부천시는 막무가내로 조합을 취소시켰습니다.

그러다 매몰비용 문제가 불거지니까 부랴부랴 시공사에 매몰비용 산출근거를 대라고 하네요. 산출근거도 물론 중요하지만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쨌든 주민들이 물어내야 하는 건데 적어도 사업을 취소하기 전에 현장에 한번이라도 나와서 실태조사를 거쳤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합의 요구를 묵살하고 무조건 사업을 취소시킨 부천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춘의1-1구역 조합 관계자)

주민 50% 이상이 사업 반대에 찬성하면서 재개발 사업이 취소된 경기도 부천시 춘의1-1구역. 사업이 취소된 이후 찾은 춘의1-1구역 곳곳에는 사업 취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경축, 춘의 1-1구역 재개발 조합설립인가 부천시로부터 9월 13일 취소되었습니다'

조합-시공사, 민사소송 진행되면

'경축'이란 표현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는 주민 간 갈등이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사업비가 700억원 가량 크게 늘어나자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급기야 사업이 취소됐는데, 매몰비용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 춘의1-1구역 사업 취소를 알리는 현수막. 하지만 사업이 취소된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매몰비용은 그동안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빌려 쓴 돈입니다.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총회를 열고, 조합 사무실을 운영하고, 아파트 설계 용역비 등 곳곳에 들어가야 할 자금이 필요합니다. 조합을 세우고 시공사를 정하고 나면 통상적으로 시공사가 조합에 사업비를 빌려줬었습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충당할만한 조합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향후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을 팔아 남은 이익으로 그 돈을 갚는 등 정산 과정을 거치기는 합니다.

그런데 사업이 취소됐으니 시공사는 "사업이 취소됐으니 빌려간 돈은 갚아야 한다"며 조합이 빌려쓴 돈(49억원)의 7배에 달하는 325억2000만원을 청구했습니다. 여기에는 2009년 9월 시공사를 선정한 이후 조합이 빌려쓴 원금과 그에 대한 이자, 시공사가 수주활동을 하면서 들어간 영업비, 관리비 기타 등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GS건설 측은 "돈을 빌려줄 당시 조합장과 조합 대의원 등 집행부가 연대보증을 섰지만 조합 집행부만을 보고 돈을 빌려준 것은 아니다. 조합 운영 정관에는 조합원이 연대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나눠 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핵심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대체 누가 얼마나 물어내야 할 것인가'.

현재 재개발 사업의 근간이 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상 매몰비용 분담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조합 정관(운영 규칙)에 따라 이 기준이 나뉘기 때문에 구역마다 처리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춘의1-1구역의 경우 조합 정관에 '사업에 대한 추가 비용을 조합원이 나눠 부담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조합원들의 연대 책임은 피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개발 사업은 재건축 사업과는 달리 토지 및 집의 위치(도로와의 접도율), 대지지분 등에 따라 권리가액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또 한번 파란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책임소재가 가려진 이후 조합원들이 매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단순히 조합원수대로 매몰비용을 나눠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각종 소송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조합은 사업 인허가권자인 지자체에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사업 취소 결정 가처분 신청과 사업 취소를 다시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합 관계자들은 재개발 취소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취소를 검토하는 곳이라면 주민들 간의 충분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취소에만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시공사는 '(민사)소송을 해봐야 조합이 물어내야할 매몰비용을 얼마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민사소송은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시공사가 주민들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넣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년간 주민들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게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가 최근 뉴타운이나 재개발 사업을 취소할 수 있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 주민 50% 이상이 사업을 반대할 경우 사업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말 그대로 사업을 취소하고 구조조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매몰비용 문제는 사업이 취소된 이후 조합과 시공사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막무가내식으로 지정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하라니 정말 무책임합니다. 정부가 매몰비용을 저금리로 대출해준 뒤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특단의 대책이 절실합니다."

▲ 춘의1-1구역 내집지킴이(비대위) 측이 구역 곳곳에 붙여 놓았던 홍보물. 조합 관계자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주민들을 현혹시켜 사업을 취소했으나 조합원들의 연대책임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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