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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5시] 쿠릴열도 조업 일본의 생떼

중앙일보

입력

일본 우익단체의 교과서 파동에 이은 쿠릴열도(남단 4개섬)수역 어업분쟁으로 한.일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어업분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일본이 여간 억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지역은 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일본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곳이다.

한국 꽁치잡이 어선들은 지금까지 러시아와의 합의 아래 남부 쿠릴열도 수역에서 별 잡음 없이 조업을 해왔다.

일본이 1999년 1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발표한 후에도 한국 민간업체들은 러시아 민간업체들과 조업계약을 했다. 일본 정부도 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한국이 한.러 어업협정을 통해 조업의 법적 지위를 정부간 합의로 바꾸자 "영유권 침해" 라며 보복조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 입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 어선도 매년 이 수역에서 러시아에 돈을 내고 조업 중이다. "조업이 영유권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는 전제 아래서다. 일본은 이 돈은 "입어료가 아니라 수산자원 보전 협력금"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명칭이야 어떻든 이는 사실상의 입어료며 일본이 이 수역에 대한 러시아의 실효적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일본이 한국 어선의 조업을 막겠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국제적으로도 분쟁수역에서의 조업은 영유권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관할권을 가진 국가의 허가를 받는 것이 관행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놓고 전쟁까지 벌였던 포클랜드 수역의 경우 지금은 관할권을 행사하는 영국이 입어료를 받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다케베 쓰토무(武部勤)농림수산상이 이 수역과 닿아있는 홋카이도(北海道)출신이어서 현지 어민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정부, 정치계에 보수화 바람이 불면서 쿠릴열도 남단 4개섬 반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주일 외교소식통은 "이런 입장.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편다는 느낌도 든다" 고 말했다.

자국영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입어료를 내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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