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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보화는 '신구 동거'

중앙일보

입력

정보화에 관한 한 프랑스는 두 개의 모습을 가졌다. 이미 1981년 인터넷의 전신인 미니텔 사업을 시작, 80년대 중반에 많은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기차와 영화표를 예약하던 정보화 선진 국가였다. 하지만 너무 일찍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90년대 들어 전세계에 인터넷 열풍이 불었지만 미니텔에 너무나 익숙한 프랑스는 인터넷을 철저히 외면했다. 여기에 인터넷은 미국의 발명품이라는 프랑스 사람들의 외면심리까지 작용해 프랑스의 인터넷 보급을 마냥 더디게 했다.

9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2%, 독일인의 5%, 덴마크인의 27%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반면, 프랑스인 중 인터넷 사용인구는 0.7%에 불과했다.

미니텔은 국영통신회사인 프랑스 텔레콤(FT) 이 무료로 제공하는 단말기를 전화선에 연결한 뒤, 검색.예약기능을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는 비디오 폰이다. 국내용이라는 치명적 한계 외에도 효율성면에서 인터넷을 따라올 수 없다. 한때 ''프랑스의 자랑'' 이라고 떠들던 현지 언론들은 이제 미니텔을 정보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이런 프랑스에도 점차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97년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인터넷 강화를 선언한 이후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를 기준하면 전 가구 중 40%가 PC를 설치했고, 이중 22%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지난해 기준으로 도메인이 프랑스 국적임을 말해주는 ''fr'' 로 끝나는 사이트도 5년전의 열배인 5만7천개에 달한다.

인터넷의 확대도 주목되지만 인터넷이 기존의 미니텔과 상생(相生) 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도 관심거리다. 이를 가리켜 뉴욕 타임스는 프랑스의 좌우합작 정권을 가리키는 말인 ''동거(코아비타시옹) '' 라고 표현했다. 인터넷과 미니텔의 동거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대형 은행인 BNP파리바는 온라인 뱅킹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미니텔 이용도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미 1백50만 가구에 보급돼 있는 미니텔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후 프랑스도 사용자가 미니텔을 사용하다가 인터넷에 들어와서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범서비스를 올 초부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시작된 미니텔이 국민들에게 인터넷도 쉽게 전파시킬 수 있는 토양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이용한 만큼 전화를 통해 사용료가 부과되는 철저한 유료서비스인 미니텔이 퍼져 있는 프랑스에서는 인터넷의 최대 과제인 유료화가 그만큼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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