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재인 후보의 무책임한 NLL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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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4일 2007년 11월 말에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이 “회담에 응하는 태도가 대단히 경직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10·4선언의 핵심인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가 국방장관회담 결렬로 무산됐고 그 책임이 당시 국방장관에게 있다고 밝힌 셈이다. 무책임한 발언이다.

 문재인 후보는 그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이었다. 그런 사람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변경을 다루는 중대한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 측 협상 대표의 태도가 경직돼 회담이 결렬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모든 남북회담에서 회담 대표는 거의 재량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회담에 가기 전에 회담 전략을 짜는 것은 물론이요 회담 도중에도 중대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청와대와 연락해 훈령을 받는다. 그런데도 문 후보는 국방장관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회담이 결렬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장수 장관이 청와대의 훈령을 어기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방안은 성사만 된다면 한반도 평화를 크게 증진시킬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회담 결렬에서 보듯 북한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NLL을 양보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하다. 결국 당시 회담이 결렬된 것은 이처럼 어렵고 민감한 문제를 국방장관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노무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국민의 반대를 넘어서 실현시킬 방도는 없는 법이다. 당시 정부가 NLL을 양보할 의사가 있었다면 사전에 국민의 동의를 받기 위한 설득 노력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임기 말이던 노무현 정부는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문 후보는 이날 NLL을 변경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을 설득해 NLL을 인정하도록 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2007년 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회담이 결렬됐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