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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떤 노부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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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호 30면

아침 출근길 지하철 4호선 서울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계단을 오르면 멋쟁이 노부부를 만난다. 아침 7시에서 9시30분, 노부부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갈한 모습의 80대 노부부가 신문을 받아들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행인들은 지하철 안에서 보던 신문을 가져다주는 것으로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키 작고 노쇠한 노부부는 전동차 안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수거할 수도 없다. 그저 신문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을 기다릴 뿐이다. 그래도 꽤 많은 이들이 단골손님처럼 신문을 가져다준다. 더러는 집이나 지하철에서 신문을 모아다주는 사람도 있다. 늘 깍듯이 감사하며 나란히 서 있는 노부부에게서 안쓰러움보다는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느낀다.

조용철 칼럼

옷깃을 스친 지 1년여 만에 폐지 카트를 끌고 가는 두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일하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너무 감사해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벌 받을까 겁나요. 남한테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도움만 받아서요. 국립묘지로 물 뜨러 가서 기도해요. 신문 가져다주는 분들 건강하고 집안도 잘되고 새끼들도 다 편안하라고요.”

하지만 지하철 풍경은 1~2년 사이 급속히 달라졌다. 서 있는 사람도, 자리에 앉은 사람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TV를 보거나 카톡을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한다. 전동차 한 칸에 신문을 보는 사람은 서너 명뿐이다. 그러면서 전동차 선반 위에 놓인 신문을 수거하는 이도 확 줄어들었다.

신문 폐지를 모아 살아가는 노부부의 벌이는 더욱 시원찮게 줄어들었다. 신문을 가져다주는 이도 줄고, 페이지도 얇아져 수거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당 200원 했던 폐지 가격도 요즘은 150원 받기도 어렵다고 한다. 일주일 잘 모으면 300㎏, 그래 봐야 4만5000원을 번다. 할머니는 “폐지 가격이 떨어지는 걸 보니 요즘 경기가 나쁘긴 나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래저래 노부부의 삶은 더욱 힘들고 고달파졌다. 낮에는 주택가를 돌며 종이박스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는데, 그나마 6·25 참전용사인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 수당 12만원을 받아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된다. 노부부는 자식들에게 손 벌릴 형편도 아니다. 아니, 기대조차 않는다. 직장에서 일찌감치 명퇴를 당한 자식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사글셋집에 살면서 손주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낭떠러지에 선 노인도 많다. 지난 6월 인천의 한 주택가에선 60대 후반의 부부가 동반 자살을 했다. 유서에는 ‘무엇을 향해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회한과 생활고가 묻어 있다. 시신은 의과대학 해부용으로 기증한다는 말과 함께. 이들은 장례비용으로 50만원을 옆에 놓아둔 채 생을 끝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3.5명이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 12.8명보다 2.6배나 높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81.9명으로 일본(17.9명)의 4배, 미국(14.5명)의 5배를 넘는다.

지금보다 훨씬 심한 가난·전쟁 같은 온갖 역경을 극복한 60∼80대 어르신 세대가 이렇게 무너지는 이유는 뭘지 고민해본다. 뒤떨어진 노인복지정책 못지않게 노후를 충실히 준비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부모 봉양을 포기한 가족 문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노인들의 경제난과 고독·소외감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힘든 생활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지하철 서울역 노부부의 삶이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노부부는 그렇게 팍팍한 삶 속에서도 노인대학에 나가 노래나 종이 접기를 배운다고 한다. 행복이 돈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감사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조용철 영상 에디터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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