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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화학 키웠듯 이젠 서비스 산업 육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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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수가 미래다’ 기획시리즈 좌담회 참석자들은 “내수를 살리지 못하면 내 자식의 일자리가 없다는 위기의식을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가져야한다”는 데 공감했다. 왼쪽부터 이경태 고려대 석좌교수,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강정현 기자]

다들 경기회복의 답은 내수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도 많이 해온 말이라 오히려 건성으로 들리기도 한다. 1960~70년대 중화학 공업을 키우던 열성으로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 가다간 내 아들·딸도 직장을 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25일 열린 ‘내수가 미래다’ 기획시리즈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수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치권은 기득권자를 보호하느라 규제를 털어버리지 못한다. 국민 정서는 여전히 자본과 자산가에 배타적이다. 성장률이 영(0)으로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릴까. 이날 좌담회에는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이경태 고려대 석좌교수,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참석하고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이 사회를 봤다.

▶사회=추석 대목이지만 장사하기 어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대로 떨어질 전망이 많다. 이대로 가면 내수의 불씨마저 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병원=제조업은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이다. 유럽과 미국이 금융위기 전처럼 빚 내서 소비하지 않으면 팔아먹을 데가 없다. 답은 서비스산업에 있다. 한국은 의료와 교육 서비스에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데 왜 만날 답보상태인지 답답하다.

 ▶이경태=거시적으로 보면 내수가 살아날 요인이 별로 없다. 세계는 이미 저성장에 빠졌고, 정치상황도 투자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소비증가율은 몇 년째 성장률을 밑돌고, 지난해 순저축률은 2.7%에 불과하다. (이미 쓸 만큼 쓰고 있어) 소비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최병일=국내 소비나 투자 여력은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이젠 내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서울에서 비행기 두 시간 거리에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 3억 명이 산다. 이제 짝퉁엔 관심 없는 중국 부자들과 엔고를 누리려는 일본 소비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깔 때 전 세계가 비웃지 않았나. 서비스산업 인프라를 지금 선제적으로 깔아야 한다.

 ▶사회=경제가 어려울수록 부자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해야 한다. 가진 사람들이 써야 사회적으로 돈이 돈다. 부자들의 소비를 색안경을 쓰고 보면 곤란하다.

 ▶이=맞는 말이다. 돈 쓸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이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 해외로 나가려는 중산층을 붙잡아야 한다. 내수 살리기는 이런 식으로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길이 보인다. 의료와 교육서비스 문제도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의료산업 문제를 꺼내면 영리법인 얘기가 나오는데, 반대가 너무 많다.

 ▶박=처음부터 영리법인이란 용어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병원이 외부 투자를 받도록 하는 건데, 명칭이 오해를 불렀다.

 ▶최=이름을 ‘투자개방형 병원’이라고 바꿔도 국민 정서를 뚫진 못할 거다.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외국인이 돈 벌어가는 걸 배 아파하는 정서가 여전하다.

 ▶박=국민정서의 벽을 고집하면 절대 일자리 못 만든다. 다들 위기의 실상을 모르고 있다. ‘일자리가 중요한가, 아니면 계속 국민정서만 내세울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일자리 창출에 둬야 한다. 예컨대 정부 각 부처는 관련 산업에서 일자리를 몇 개나 만들었는지를 보고토록 하자.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별로 고용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고용 영향 분석’도 의무화해야 한다.

 ▶사회=좋은 아이디어다. 기업들 역시 일자리 실적을 알리도록 하면 좋겠다.

 ▶박=알뜰주유소 사례를 보자. 정부는 휘발유를 L당 100원 싸게 한다며 세금을 지원해 가며 만들었다. 그런데 고용영향을 평가한다면 마이너스다. 셀프주유기 도입으로 주유소 한 곳당 일자리가 6개씩 없어진다.

 ▶최=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확대 진흥회의를 했듯이 이젠 ‘월례 고용 점검회의’를 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 서비스업 살리기를 위한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도 관료적 발상에 있다. 경제자유구역 같은 특구만 만드는 식인데, 현실과 맞지 않는 접근이 많았다. 선글라스를 팔려면 검안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그렇다. 많은 서비스업 분야가 기득권 보호 논리에 갇혀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타개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회=국내 시장은 너무 좁다. 젊은 인력을 동원해 새 일자리를 해외에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이=최근 에티오피아를 도와주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아프리카 경제를 분석할 곳이 국내엔 없었다. 결국 미국 컨설팅사를 썼다. 아프리카에 사업 기회가 많을 텐데 이런 데까지 생각이 못 미친다. 정부든 전경련이든 가이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다른 분야는 소프트웨어다. 정부가 4대 강 사업 같은 토목사업만 할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분야에 마중물을 부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한국 자영업자 600만 명 중 절반은 은퇴자들이다. 매년 100만 개의 자영업체가 생기고 80만 개가 문을 닫는다. 실패 확률이 80%인데도 계속 들어온다. 뭘 할지 막막해서다. 정부가 이들에게 적절한 창업교육을 해줘야 한다.

 ▶박=은행연합회가 5000억원짜리 청년 창업자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영세 자영업만 늘리고 있다. 젊은 층 중에 10억원짜리 사업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몇 천만원 빌려서 문방구나 세탁소를 차리겠다고 한다.

 ▶이=그런 청년 창업은 지원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박=신청하는 게 그런 것밖에 없다. 진짜 기술 있고, 성공할 만한 사업은 창투사가 먼저 채 간다.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같은 금융지원이 영세 소상공인 창업자금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도·소매업, 숙박·음식업종 창업만 늘어나는 이유다.

 ▶사회=투자와 소비가 내수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야 국내에 일자리가 생긴다.

 ▶이=그래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에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획기적인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전국을 몽땅 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오지 않는 외국인 투자 노래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 친화적인 제도만 만들면 외국자금이 들어올 거란 건 착각이다. 한국이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이상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국내 기업 투자를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

 ▶박=이젠 외국, 내국 가려서 혜택을 줄 때가 아니다. 물불 안 가리고 똑같이 주면서 각 지자체가 경쟁해야 투자유치가 될까 말까다. 외국인이 돈 벌어가는 것 배 아파하는 정서적 장애를 극복 못하면 절대 투자유치가 안 된다.

 ▶이=일자리가 절실하다는 걸 온 국민이 인식해야 한다. 노·사·정·시민사회 고용연대를 만들자. 바로 우리 자식들을 위한 얘기다.

특별취재팀=서경호(팀장)·최지영·김영훈·김준술·장정훈·한애란·채승기 기자

◆ 좌담회 참석자 프로필

 ▶이경태(65) 고려대 석좌교수

- 1998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 2001년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

- 2005년 KIEP 원장

- 2008년 국제무역연구원장

- 2012년 2월~ 고려대 석좌교수

 ▶박병원(60) 전국은행연합회장

- 2005년 재정경제부 1차관

- 2007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 2008년 청와대 경제수석

- 2011년 11월~전국은행연합회장

 ▶최병일(54) 한국경제연구원장

- 1989년 통신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1997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2011년 11월~ 한국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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