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다피 쫓아낸 무장세력 이젠 리비아의 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장기 독재자를 내몰고 ‘아랍의 봄’을 연 시민군과 무장 단체들. 이들이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 피살을 계기로 민주 정부의 태동과 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랍의 봄이 부른 역효과다. 민주화를 지원하던 미국마저 무장단체 등이 주도하는 반미 공격에 놀라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미국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무장단체 조직원들이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릭소스 호텔을 공격해 경비원들과 교전을 벌였고 2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곳은 새로 선출된 의원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NYT는 이날 공격에 가담한 조직은 세 곳으로, 무장단체 해산을 명령한 정부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2일 리비아 정부는 불법 민병대를 모두 해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치안 유지를 위해 불법 민병대를 이용해 온 정부를 국민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장단체들은 대부분 지난해 ‘아랍의 봄’ 민중 봉기 때 생겨났다. 당시에는 모든 조직이 시민군이라는 이름 아래 카다피 제거를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카다피 지지 세력이 잔존하는 군·경찰 조직을 믿을 수 없었던 과도정부는 치안 공백을 막기 위한 도구로 이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용병들은 조국에 자유를 가져온 투사라며 스스로 합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민중 봉기를 학습한 국민도 상대해야 한다. AFP는 “리비아 새 정부가 직면한 두 번째 과제는 인내심이 없고, 힘을 갖게 된 민중”이라고 분석했다. 무장 조직을 정치 파벌들의 ‘어깨’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리비아 국민의 불만은 미 대사 피습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런 예상치 못했던 ‘아랍의 봄 역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오바마에게 아랍의 봄은 외교적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지난해 2월 1일 오바마는 호스니 무바라크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랍권에서 30년 동안 거의 유일했던 미국의 친구를 버린 결정이었다.

 아랍의 봄 열풍이 지나간 지금 오바마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이슬람 모독 영화로 촉발된 아랍권의 반미 바람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민주화를 이뤄낸 리비아·튀니지·이집트 등 아랍의 봄 국가의 국민조차 미국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됐다. NYT는 “오바마는 언행을 통한 과감한 지원이 이 지역에서 꼭 선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혹독한 교훈을 얻게 됐다”며 “이제 그에게 대아랍 외교정책의 방향 자체를 전환하라고 조언하는 측근도 있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