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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연예] '에픽하이' 타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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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고학력 연예인은 이제 드물지 않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 석사까지 받고 소위 '딴따라'를 하겠다고 나선 3인조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본명 이선웅.25)는 개중에 눈에 띈다. TV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다소 엉뚱하다. 12일부터 고정 출연하기 시작한 MBC 시트콤 '논스톱5'에서는 호기심이 많아 주변의 모든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고 박학다식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현실에선 어떨까. 그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힙합 가사로 시학(詩學)을 강의할 수 있을 정도의 영문학 실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어디 가서 무얼 하든 잊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배워서 남 주자"다.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www.cyworld.com/tablo)에는 'Save Society(사회를 구하자)!'란 코너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당신의 손을 기다리고 있어요. 봉사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힘들어도 딱 하루만!'

팬들이 올린 봉사 경험담은 200건이 넘었다. 우수 경험담을 골라 도토리(사이버 머니)를 선물하기도 했다.

"성공하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겠죠.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 힘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거라고 부모님께 배웠어요."

그는 종횡무진 방송가를 누비고 있다. KBS.2TV '상상플러스'와 케이블 음악 채널 MTV '하이 소사이어티', MBC 라디오 '친한 친구' DJ를 맡았다. 그런 와중에 3집 준비도 하고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됐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활동은 모두 포기한 채 힙합만 해야 한다는 건 좁은 시각이라고 봐요. 미국의 유명 래퍼인 에미넴이나 2pac도 영화 배우 등으로 활동했잖아요."

그는 방송의 막강한 권력을 체험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덕에 갖게 된 힘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 그의 꿈 중 하나는 청소년들이 마음껏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고 상담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여럿 짓는 것이다.

"방송 활동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힙합 정신과 문화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에요. 게다가 음악과 연기, DJ 활동 모두 재미있거든요."

하지만 높아진 인기 때문에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 네티즌에게 날아온 쪽지를 읽고 마음이 크게 상하기도 했다. "타워팰리스에 산다는 얘길 듣자마자 당신이 싫어졌어요"라며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답장을 보냈다.

'저는 역삼동 작은 원룸에서 친구와 살고 있어요. 부모님께서 타워팰리스에 살고 계십니다. 고아로 자란 아버지는 60년 넘게 고생하신 끝에 어머니를 위해 좋은 집을 장만하셨어요. 부모님은 단 한순간도 돈을 퍼다 버린 적이 없어요. 번 돈의 대부분을 기부하고 계시고, 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지으셨어요. 고교 졸업 이후 용돈 100원도 주신 적 없고, 대신 돈으로 살 수 없는 깨끗한 사상과 열정을 가르쳐주셨어요. 돈 가진 게 죄가 아니라 돈을 의식 없이 이기적으로 쓰는 게 죄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받은 부모님은 결국 타워팰리스를 떠나 용인으로 이사했다. 그도 아팠다. 몇 번 홈페이지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열었다. 대중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의 생각을 노래에 담을 수 있거든요. 또 제 음악과 글을 접한 뒤 조금씩 변하는 팬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사회란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거니까, 사람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글=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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