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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조업 기반 무너질라 ‘르네사스 반도체’ 구출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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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경영 위기에 빠진 일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구출에 일본 제조업의 간판 기업들이 앞장섰다. 르네사스는 자동차와 디지털 가전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컴퓨터를 공급하는 일본 최대의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도요타자동차·파나소닉 등 일본 대형 기업들이 최근 자본잠식 위기에 직면한 르네사스에 3자 배정 방식으로 1000억 엔(약 1조5000억원)을 출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출자에는 도요타와 파나소닉 외에도 닛산·혼다·캐논 등 일본의 간판 기업들과 일본 정부 계열 펀드인 산업혁신기구도 참여한다. 경영위기에 빠진 부품 공급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다른 업종이 거액의 출자에 참여하는 것은 일본에서 이례적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고전에서 비롯된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한국·대만이 약진하고, 비메모리 부문에서 미국 인텔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최근 존재감을 거의 상실했다. NEC·히타치제작소·미쓰비시전기는 2003년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통합해 엘피다를 출범시켰으나 이 회사는 4480억 엔의 부채를 떠안고 도산해 올 2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들 3개 회사가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통합해 2010년 4월 출범시킨 르네사스는 마지막 보루였다.

 르네사스는 출범 이후 줄곧 적자 행진을 벌였고 내년 3월 말 결산에는 1500억 엔(2조2500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르네사스는 어쩔 수 없이 직원 5500명에 대한 조기퇴직을 단행하고 일본 내 19개 공장을 매각·폐쇄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른 비용은 르네사스의 3대 가전 주주(NEC·히타치·미쓰비시)와 미쓰비시도쿄UFJ 등 주요 거래은행들이 내놓은 1000억 엔의 협조융자로 조달됐다.

 이런 비상조치에도 불구하고 실적 전망이 계속 어둡다는 판단에 따라 외부 자금 조달이 모색돼 왔다. 지난달에는 미국계 대형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KKR)가 르네사스의 인수를 타진했다. 경영 정상화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데도 1000억 엔을 출자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일본 정부와 3대 가전 주주들은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반도체 제국이었던 일본 반도체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르네사스가 기술개발과는 관계없는 글로벌 펀드 투자회사에 넘어가면 일본 제조업 전체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발동된 것이다.

 특히 도요타·닛산·혼다 등 대형 자동차 회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인 르네사스는 자동차 제어의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컴퓨터의 최대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컴퓨터는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디지털가전이나 산업기계의 모터를 정밀하게 작동시킨다. 첨단제품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르네사스는 일본에서 마이크로컴퓨터의 50%를 공급하고 세계적으로도 3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기업이 투자회사에 넘어가면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데다 안정적인 부품 조달을 장담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KKR은 인수 조건으로 경영진의 총사퇴를 내걸었다고 한다.

 일본 기업들의 르네사스 구출 작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르네사스는 마이크로컴퓨터 외에도 가전용 시스템LSI(대규모 집적회로)를 제조하고 있으나 이 부분도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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