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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내수산업 키워 저성장 극복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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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경제가 위기다.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나라 안팎의 돌발요인에 의해 나라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지도 않았고, 금융시스템이 마비된 것도 아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지도 않았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작금의 경제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한 것은 이대로 가서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경제의 각 부문이 시름시름 기력을 잃고 있다. 그동안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마저 상승세가 꺾였고, 침체된 내수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올해 성장률은 어느 틈에 2%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가 일시에 탁 고꾸라지지는 않았지만, 부지불식간에 구조적인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불안하다. 국민들은 당장 돈벌이가 시원찮아 불안하고, 집값이 더 떨어질까 불안하며, 노후대책이 없어 불안하다. 불안하면 돈을 쓸 여유가 없어진다. 국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내수는 더욱 침체할 수밖에 없고, 저성장과 장기 불황의 악순환은 피할 길이 없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을 위기라고 보는 것이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일보는 연초에 내수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내(내수)·일(일자리)’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 적극 추진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모델로는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내기 어렵다.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는다. 더욱이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그나마 버티던 수출마저 부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일자리 창출의 활로는 내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내수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에서 생긴 소득이 다시 내수의 핵심인 소비 수요를 분출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내수가 미래다’라는 기획을 다시금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부터 내수산업을 육성해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저성장의 질곡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마침 가까운 곳에 내수 확대의 기회가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의 범위를 내국인의 소비뿐 아니라 외국인의 국내소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일본·동남아의 중산층을 우리의 내수를 키우는 주력군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자면 내수산업의 핵심인 서비스업의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 관광이나 도소매업뿐 아니라 의료·법률·교육·정보기술(IT) 연관 서비스업까지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양질의 고급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마침 연말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은 한결같이 ‘일자리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총론적인 구호에 그칠 뿐 손에 잡히는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부진의 원인이 내수산업의 침체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짚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수산업의 육성은 일자리 창출의 관건이자 한국 경제의 장래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됐다. 공허한 구호 대신 어떤 규제를 어떻게 풀어 일자리를 몇 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공약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