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이라서 행복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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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31면

나처럼 혼혈인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많이 변한 걸 느끼는 요즘이다. 핏줄로 사람을 차별하던 과거와 달리 한국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 같은 혼혈인을 이젠 텔레비전·영화 등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이런 변화는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 개인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을 독자 여러분께서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시길 바란다. 혼혈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고 있으나 여전히 근절되진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헤아려 주시면 좋겠다.

1970년대 말, 난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광고에 어린이 모델로 출연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출연한 그 광고는 히트를 쳤다. 90년대 초까지도 한국을 방문할 때면 그 광고를 봤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내 아버지는 부산 부두 건설 총책임자였던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앙드레 김의 모델로 활동했던 한국인이다. 광고 촬영 무렵, 다른 어느 광고에도 혼혈인 아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가수 인순이마저 특별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던 시절이었다. 광고가 인기를 얻어가면서 해태 측은 내가 미국계라는 사실을 슬며시 뒤에 감추도록 충고했고, 나는 “어쩌다 보니 혼혈처럼 보이는 아이”가 됐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로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나도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서울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어느 방송국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혼혈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스타’로 나를 출연시키겠다는 거였다. 나에게 주어진 질문 중 하나는 “혼혈로 태어나느니 안 태어나는 게 나았을 뻔한 적이 있느냐?”는 거였다. 혼혈에 대한 차별을 부추기는 질문이었다. 그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혼혈로 태어나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비정상’이라는 생각을 가진 듯했다. 사람마다 문제는 다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당시 자신감 넘치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부산과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차별을 그리 많이 겪지도 않았다. 오히려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두 문화권을 다 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이런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제작자들은 마치 내가 틀렸다는 걸 입증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난 결국 프로그램 출연을 취소했다.

세월은 흘렀고 이제 시대도 변했다. 한·미 양국의 문화권에서 살아오면서 나는 자신을 양국의 비공식 외교사절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며 직장 등에서 두 문화권 간의 오해를 풀려고 노력해 왔다. 내가 다문화권 소통 전문가가 된 것은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지난 10년간 나는 다문화 소통이 소위 ‘뜨는’ 주제가 아니었을 때부터도 많은 기업·대학·정부기관·비정부기구 등에서 그에 대한 강의를 했다.

아리랑TV에서 토크쇼 ‘이너 뷰(INNERview)’를 진행하는 지금, 나는 한국·한국인이 얼마나 멋진지를 세계에 전파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다. 물론 여전히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DNA검사를 하면 혼혈로 판명되는 한국인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우린 학교에서 혼혈은 유전적으로 더 우월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배웠다. 한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 시점에서 이제 외국인 혐오증은 버리고 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100%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을까 걱정스럽다. 새로운 칼럼니스트로서 한국에 대해 좋은 애기만 하면서 안전하게 갈 수도 있겠지만 시대는 변했다. 나 같은 혼혈도 공격이나 차별의 두려움을 떨치고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시대는 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해태제과가 다시 내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출시하진 않을까? 그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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